[오늘 본 옛 그림] 歲寒에 옹골지다
입력 2010-01-04 16:46
무리 가운데 있어도 혼자인 나무가 있으니,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한 소나무다. 소나무는 아뜩한 절벽에 뿌리 내린다. 억척스럽다.
소나무는 검질긴 바위짬에서 자란다. 거쿨지다. 이 나무를 베어 종묘를 모시고, 경복궁을 짓고, 남대문을 세웠다. 아기가 태어나 금줄을 치고, 장을 담가 항아리에 두른 것이 솔가지이며 임금의 관(棺)이 된 것이 솔 둥치다. 소나무는 빈부가 나누어 쓰고 귀천이 더불어 아낀다. 그 끈기는 민초의 생김새요, 그 지조는 군자의 됨됨이다.
조선 후기 문인화가 이인상이 그린 ‘설송도’를 보자. 어둑시근한 겨울 땅거미에 소나무 두 그루가 눈을 오달지게 뒤집어썼다. 잔가지 번거롭지 않으니 노송임을 알겠다.
차고 시린 눈이 덮인들 늘푸른나무가 욕되겠는가. 기화요초 만발할 때 소나무의 상록은 시답잖지만 헐벗고 얼어붙은 세한이 오면 기색이 옹골지다. 앞에 꼿꼿한 나무는 치솟는다. 뒤에 휘우듬한 나무는 앙버틴다.
‘그림자는 꼴을 따른다(如影隨形)’고 했던가. 솟고 버티는 자태가 곧 소나무의 성품일진대, 가혹한 이 겨울을 견뎌내라고 가르친다. 무엇을 바라고 견디란 말인가. 굽거나 곧은 모양에서 까닭을 찾는다. 굽은 나무는 선산을 지키고 곧은 나무는 대들보를 꿈꾼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학고재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