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동재] 보복과 응징의 악순환,테러

입력 2010-01-04 16:46


새해 벽두부터 지구촌이 테러에 대한 공포로 뒤숭숭하다. 지난 연말부터 긴급 뉴스로 전해지고 있는 흉흉한 사건들의 후폭풍이 가라앉기는커녕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탓이다. 온누리에 평화가 가득하길 바라는 성탄 메시지와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건네는 덕담이 무색해질 정도다. 알카에다 조직의 아라비아반도지부(AQAP). 지난해 12월 25일, 민간 항공기 폭파라는 끔찍한 사건을 자행코자 했던 강성 테러 집단의 명칭이다. 20대 초반의 나이지리아 청년에 의한 미국 여객기 테러 기도 사건이 드러난 이후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졸지에 블랙 크리스마스로 바뀌고 말았다.

지난해 1월 알카에다 사우디아라비아 지부와 예멘 지부가 통합되면서 출범한 AQAP의 근거지는 이슬람 극단주의의 총본산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예멘. 대부분의 알카에다 지부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교를 수호하기 위한 지하드(JIHAD)-그들의 말로는 성전(聖戰)-가 최후의 목적임은 물론이다. 언제라도 목숨을 버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정예 조직원만 200∼300명에 달한다.

2001년 뉴욕의 쌍둥이 빌딩(세계무역센터)을 공격, 폐허로 변하게 한 9·11테러의 주모자 오사마 빈 라덴의 전 비서 나세르 알 와하이시가 지도자다. 사우디가 1급 수배자로 다루고 있는 그는 2006년 예멘 감옥에서 탈출한 26명의 알카에다 요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9년 전의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식으로 펄쩍 뛰며 결전 의지를 다지고 있는 것은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또 다른 테러 세력인 탈레반의 발호도 만만치 않았다. 탈레반의 주요 분파인 하스나인 무아위아는 지난해 12월 28일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30여명이 숨지고 50명 이상이 부상했다. 이 때문에 시아파 무슬림의 최대 종교 행사인 아슈라는 한순간에 피로 얼룩졌다. 문제는 이 같은 참사가 마치 연례 행사처럼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알카에다와 탈레반으로 대표되는 테러 집단에 대처하는 미국의 태도는 단호하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 미국에 위협을 가하기 위해 모의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 철저히 분쇄할 것이라고 거듭 밝히고 있다. 다소 유연했던 대테러 정책 노선을 뒤로한 채 강경한 국면으로 회귀하고 있는 최근의 움직임은 긴박하다. 영국과 독일 등 유럽 각국도 미국과 발걸음을 같이하고 있다. 선량한 민간인을 노리는 테러 행위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공감대가 폭 넓게 이뤄지는 양상이다.

대한민국도 무관치 않은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번에 항공기 테러를 기도했던 알카에다 조직 AQAP는 우리와도 악연이 있다. 지난해 3월 예멘의 시밤 유적지를 둘러보다 자살폭탄 테러로 인해 한국인 4명이 숨진 사건도 이들의 소행이었다. 당시 범인으로 추정되는 조직원들은 관광객들이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한국을 좋아한다”고 태연하게 맞장구쳤다. 하지만 뒤돌아서자마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탈레반과도 생각하기조차 두려운 기억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2007년 6월 아프가니스탄을 찾은 23명의 봉사단원을 납치했다. 우여곡절 끝에 21명은 풀려났지만 2명은 끝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이에 앞서 2월에는 다산부대 기지 밖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던 윤장호 병장이 폭탄 테러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는 올 여름쯤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지방재건팀의 경호와 경비를 담당하기 위해 국군부대를 파병할 예정이다. 탈레반은 진작부터 협박성 경고를 계속해 왔지만 위축될 일은 아니다. 하지만 테러가 근절되지 않을 경우 피가 또 다른 피를 부르는 보복과 응징의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은 크다. 우리 외교·안보 당국이 내국인과 교민, 그리고 이역만리에서 복무하고 있거나 해야 할 장병들의 안전보장을 위해 모든 대비태세를 총체적으로 점검할 시점이다.

이동재 선임기자 dj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