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전차의 부활
입력 2010-01-04 16:46
1899년 5월 4일. 서울 4대문 안은 ‘쇠당나귀’를 구경나온 인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신기한 괴물을 보기 위해 시골서 일부러 올라온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고종 황제가 서양의 쇠당나귀에 시승한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4대문 안으로 몰려들었다. 서울시가 펴낸 ‘서울 이야기 여행’에 소개된 최초의 전차 개통식 광경이다.
일본 교토(京都)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개통된 경성 전차는 9대(1대는 황실 전용)가 서대문∼청량리 8㎞ 구간을 하루 10시간 왕복했다. 정거장이 따로 없어 전차는 승객들이 손을 들면 아무 곳에나 멈춰 섰다. 청량리가 종점이 된 사연은 고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종은 을미사변 이후 명성황후가 묻힌 홍릉을 자주 찾았다. 이에 미국인 사업가 콜브란과 보스트윅 등이 행차에 드는 엄청난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며 고종에게 전차 설치를 건의해 허락을 받았다.
전차 운행은 개통 3주 만에 다섯살배기 어린이가 탑골공원 앞에서 철로를 건너다 전차에 치여 숨지는 첫 교통사고로 위기를 맞는다. 흥분한 시민들이 전차를 습격, 불살라버리는 불상사로 전차 운행이 5개월간 중단됐다. 그러나 별다른 교통수단이 없던 당시 전차는 곧 최고의 인기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새 철로가 잇따라 건설되면서 노선은 40.6㎞로 늘어났다.
전차는 한국전쟁 이후 버스가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떠오르면서 내리막길을 걷는다. 교통소통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서울에선 1968년 11월 30일에, 부산의 경우 같은 해 5월에 사라졌다. 우리가 버스 중심의 교통정책을 편 것과 달리 유럽 각국은 노면전차를 대중교통수단으로 꾸준히 육성해 왔다.
머잖아 노면전차가 서울시내를 누비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다. 서울시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도심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해 노면전차 도입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전차는 친환경성과 접근성 등 지하철과 버스의 장점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선진국이 저탄소 녹색성장의 대표적 교통수단인 전차에 주목하는 이유다.
게다가 건설 비용은 지하철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공사 기간 또한 3∼4년으로 비교적 짧다. 버스에 비해 많은 승객도 태울 수 있다. 전차가 다른 교통수단을 방해할 것이라는 생각은 60년대식 발상이다. 전선이 필요 없는 무가선 전차가 개발됐고, 버스전용차로를 전차차로로 이용하면 기존 교통수단과의 공존도 가능하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