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찾는 사람들-(1) 곽희문씨 가족 케냐 봉사] 절망의 아프리카를 꿈의 땅으로
입력 2010-01-03 20:59
‘코로고초’ 사연 읽고 눈물끝에 2008년 케냐로
자비로 유치원 세워 영어 가르치고 식사 제공
2007년 무더웠던 어느 여름날 밤. 영어학원을 운영하던 곽희문(41)씨는 집 현관문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거실에서 아내와 딸이 껴안은 채 울고 있었던 것이다. 10년을 함께 살면서 아내가 그토록 서럽게 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내 강동희(42)씨와 딸 상민(10)이는 ‘넌 네가 얼마나 행복한 아이인 줄 아니’라는 동화책을 읽는 중이라고 했다. 아프리카 케냐의 코로고초에 사는 어린이들의 힘든 삶을 소개한 책이었다. 코로고초는 스와힐리어로 ‘쓰레기 더미’라는 뜻으로,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나오는 모든 쓰레기가 모이는 지역이다.
아내와 딸의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하다 갑자기 곽씨 마음이 뜨거워졌다. 곧이어 곽씨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코로고초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는 비신자였다. 몇몇 기독교 단체들이 오지 사람들을 돕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무작정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이 희망을 찾는 데 저를 사용해 주세요’라고 서툴게 기도했다. 역시 비신자였던 아내와 딸에게 기도 제목을 알렸다. 둘은 한목소리로 “OK”를 외쳤다. 이후 곽씨 가족은 함께 교회에 나가며 한마음으로 기도했다.
월수입이 1000만원에 이르던 학원을 정리하고 곽씨 가족은 2008년 3월 구호단체 ‘굿네이버스’의 일원으로 케냐에 갔다. 처음에는 빈민촌 아이들로 이뤄진 ‘지라니 합창단’을 위해 1~2년 정도 봉사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코로고초 입구에 버려진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 생활을 시작했다. 현지 사정은 생각보다 훨씬 열악했다. 그야말로 희망이 없는 버려진 땅이었다. 케냐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곽씨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태아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곳의 여성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스스럼없이 몸을 팔기도 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고,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대부분의 태아를 유산했다. 죽은 태아를 비닐봉투에 싸 버리는 것은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곽씨 가족은 참담한 현실 앞에서 코로고초를 희망의 땅으로 변화시킬 때까지 정착하기로 결심했다. 고심 끝에 무상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유치원을 짓기로 했다. 곽씨 가족은 재산을 털어 땅을 사고 건물을 세웠다. 2008년 9월 유치원이 문을 열었다. 이름은 ‘엘토토(El toto)’, 하나님을 뜻하는 히브리어 ‘엘’에 아이들이라는 뜻의 스와힐리어 ‘토토’를 붙여 ‘하나님의 아이들’이라고 지었다.
한국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했던 경험을 살려 영어를 가르치고 먹을 것도 줬다. 주일에는 교회학교를 열어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 힘들지만 보람이 있었다. 부인 강씨는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매일 아침 점심을 먹자 어느새 포동포동하게 살이 올라 예뻐졌다”며 웃었다.
영어로 기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이들 신앙심도, 영어실력도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 아이들은 곽씨를 ‘파파(papa)’, 강씨를 ‘마마(mama)’라 부르며 따랐다. 아이들의 부모도 주일학교에서 말씀을 들으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희망이 조금씩 싹트고 있지만 여전히 코로고초는 시련의 땅이다. 자비로 유치원을 운영하다 보니 1년 만에 운영비가 바닥났다. 지원을 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강씨는 지난해 10월 귀국해 과외 교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번 150만원을 매달 케냐로 부쳐 유치원 운영에 보태고 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곽씨 가족은 2010년에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짓겠다는 계획이다. 곽씨는 “솔직히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기도하다 보면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 내가 희망을 잃으면 날 ‘파파’라 부르며 따르는 아이들 역시 희망을 잃고 어둠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곽씨는 콩고에서 선교활동을 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케냐보다 더 열악한 콩고에 ‘희망의 나무’를 심을 생각이다. 지난해부터 콩고 공식 언어인 프랑스어를 익히기 위해 교재를 사서 공부하고 있다.
조국현 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