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강 회장 사퇴 파문,국민 낯이 뜨겁다
입력 2010-01-03 21:14
강정원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 사퇴로 금융권이 술렁이고 있다. 파문과 후유증이 만만찮아 보인다. 후진국형 관치금융이 부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금융 CEO가 옷을 벗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과 이정환 한국거래소 이사장도 사실상 정부의 압력에 의해 자리를 떠났다. 이런 일이 대명천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부끄럽다.
강 회장은 금융감독원이 전례 없는 고강도 사전감사를 벌이고 심지어 사생활까지 조사하자 압박을 못이겨 사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말대로 회장 선임절차나 방식에 문제가 있었을 수 있다. 사외이사들이 결정적 권한을 행사하는 시스템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이유들이 사퇴압력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그렇게 따지면 현 정부 들어 임명된 공기업 CEO나 감사는 한 점 부끄럼 없이 정당하게 결정됐는가.
우리나라에 또 하나 불패(不敗)가 있다면, 그것은 행정고시 출신 경제관료 불패다. 그들은 주인 없는 금융계 요직을 다 차지하고 나아가 금융통화위원에다 금융관련 온갖 협회장까지 싹쓸이한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그들의 파워에 민간 출신들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강 회장 사퇴에 어떤 압력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금융계는 물론 일반 국민들까지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의혹을 갖고 있다. 의혹이 아니라 확신에 가깝다. 이래서는 법과 원칙의 국가 질서가 제대로 설 수 없다. 청와대가 나서서 ‘보이지 않는 손’의 실체를 파악해봤으면 좋겠다. 일각에서 청와대 인사 연루설까지 나오고 있으니 차라리 이명박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직접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정부는 사외이사 제도를 개편한 뒤 KB금융 회장을 다시 선출할 예정이다. 여기서 관료 출신이나 특정 학맥의 인사가 선임된다면 뭐라고 할 것인가. 제도를 잘 개편해서 그렇게 됐다고 할 것인가. 회장 선임 제도를 개편하려면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다시는 잡음이 없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