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 먹인 닥종이에 한국을 그리다… 새해 첫 개인전 마련 한지작가 함섭 ‘Day Dream’

입력 2010-01-03 18:08


한지 작가 함섭(67)씨가 새해 첫 월요일(1월 4일)부터 서울 청담동 박영덕화랑에서 전시를 연다. 함씨는 신년 벽두부터 개인전을 마련한 이유를 자신의 작품 제목 ‘데이 드림(Day Dream-한낮의 꿈)’으로 설명했다. “사람은 어릴 적부터 꿈을 먹고 자라고 어른이 되어서도 꿈을 꾸며 살지요. 올해에는 우리 모두의 꿈과 희망이 실현되길 바라는 뜻을 담았습니다.”

‘은발의 청춘’을 자랑하는 작가의 서울 상수동 작업실에 들어서면 한약 냄새가 물씬 풍긴다. 한지를 붙이는 접착제로 밀가루풀과 한약재인 천궁과 용뇌를 섞어 쓰기 때문이다. “풀에 생기는 잡벌레를 막아주고 머리도 맑게 한다”는 함씨의 말대로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한결 맑아지는 느낌이다. 이 작업을 30년 넘게 했으니 작가야 오죽할까.

그의 작업은 붓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종이로 만드는 것이다. 삶은 닥나무 껍질과 풀 먹인 오방색 한지로 꼬거나 오려서 붙이고, 짓이기거나 던져서 붙인 뒤 억센 솔로 두드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유화나 아크릴화는 색깔을 내뿜지만 한지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림에 스며들게 해요. 이게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추구하는 제 작품의 독특함이자 차별성이죠.”

함씨의 작품은 해외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닥종이의 질감과 전통의 오방색을 통해 드러나는 현대적인 추상성으로 서양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2003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아르코 아트페어에서는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 부인이 “한국의 전통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호평하기도 했다. 당시 출품작이 솔드아웃된 것은 물론이다.

요즘 그의 작품이 달라졌다. 여백이 많아지고 구체적인 형상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들이 황소를 타고 노는 모습, 한복을 입고 춤을 추는 여인의 형상, 고향집에서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부모님 등이 그림 속에 어렴풋이 숨어 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한지를 붙이는 과정에서 저절로 생겨난 형상들이다.

작품의 신선한 변화는 내년 3월이면 작가의 고향인 춘천에 작업실을 새로 지어 옮겨간다는 기대와 설렘에서 비롯됐다. “이번 전시를 기점으로 홍대입구 작업실의 16년을 마감하고 고향에서 작업한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그런지 그림 속에 얘깃거리를 많이 넣게 돼요. 예술이라는 게 사람 사는 모습, 삶의 다양한 표정들을 담아내는 도구가 아니겠습니까.”

춘천 작업실에서 그가 하고 싶은 것은 대작이다. “지금 작업실은 공간이 좁아서 150호짜리 이상은 못해요. 200호 캔버스 40개를 벌써 주문해놨는데 제대로 크게 한 번 놀아봐아죠. 더 나이 들면 대작을 하기에는 힘이 달릴 것 같아 딱 75세까지만 해볼까 합니다.”

그의 신작들은 세 겹의 종이 위에 닥나무 껍질을 씨줄과 날줄로 엮고 그 위에 다시 종이를 깔고 솔로 두드리는 작업을 반복해 총 일곱 겹의 종이가 올라가야 비로소 바탕이 완성된다. 이번 신작 전시는 16일까지 열린다(02-544-8481).

글·사진=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