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대충돌… 정국 급랭] 與, 장소 바꿔 기습처리
입력 2010-01-01 00:32
‘기습작전→절차논란→직권상정 강행처리.’ 2009년 마지막 날인 31일 2010년 예산안은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 과정에서 구태의연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고성이 오갔다.
릐기습작전=오전 6시30분 한나라당 예결위원들은 안상수 원내대표실에 모여 정몽준 대표 등 한나라당 핵심인사 5명만이 공유했던 기습작전 지침을 하달받았다. 민주당이 점거하고 있는 예결위 회의장 대신 다른 장소에서 예산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예결위 회의장 대체 장소는 오전 7시 한나라당 의총이 예정된 국회 245호실. 의총에 참석하기 위해 의원들이 국회 245호실에 모여드는 사이에 예결위 김광림 간사와 차명진 의원 등 한나라당 예결위원 10여명은 예결위 회의장을 찾았다. 차 의원은 예결위 의장석 탈환을 시도하려는 듯한 움직임으로 민주당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양동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농성 중 회의장 변경 통지를 접한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 245호실에 들어왔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이 “왜 남의 의총장에 들어오느냐”고 항의해 할 수 없이 회의장을 나가야 했다. 오전 7시20분 안 원내대표로부터 회의진행 바통을 이어받은 한나라당 소속 심재철 국회 예결특위원장은 전체회의 개회를 선언했다. 이후 산회 선포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분9초. 새해 예산안 등 4개 안건은 이렇게 본회의로 넘겨졌다. 한나라당 의원 및 경위들이 막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의원들은 “날치기는 안 된다”고 소리치며 245호실 진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릐절차논란=하지만 예정됐던 오후 2시 본회의는 열리지 못했다. 예산안이 집행되기 위해 필수적인 예산부수법안이 상정된 법사위에서 의외의 변수가 등장한 것이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위해 예산 부수법안들에 대한 심사기일 지정을 통보했지만, 이보다 앞서 10시9분 민주당 소속의 유선호 법사위원장은 산회를 선포했다. 심사기일 지정 통보는 10시15분에 이뤄졌다. 국회 회의는 하루에 한 번만 한다는 ‘1일 1회 원칙’에 따라 상임위가 이미 끝났으므로, 상임위 활동은 할 수 없다는 것이 민주당 측 주장이다.
릐강행처리=여야 간 법적효력 공방 속에 당초 오후 2시로 예정된 본회의가 오후 4시→오후 6시 등 세 차례 순연된 끝에 밤 8시가 넘어서야 개회됐다. 그 사이 국회 대변인실은 “김 의장은 오전 10시5분 심사기간 지정을 결재했으며, 의사국에서 10시6분 교섭단체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는 논리로 야당 주장을 반박했다. 김 의장은 “오늘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을 처리하지 않으면 준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된다”며 본회의 개회를 선언했다. 이에 야당 의원들은 의장석을 에워싸고 “김형오는 사퇴하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김 의장은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토론을 진행할 수 없어 토론을 종결하겠다”며 표결에 들어갔다. 투표 결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0년 예산안은 재석 의원 177명 중 찬성 174명, 반대 2명, 기권 1명으로 통과됐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지는 동안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의 의원들은 ‘원천 무효’를 외쳤다. 표결이 끝난 뒤 본회의장에서 퇴장한 민주당과 민노동 의원 70여명은 본청 중앙홀에서 규탄대회를 갖고 한나라당의 강행 처리를 강력 비난하면서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을 다짐했다.
한장희 강주화 이도경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