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임성빈] 교회는 교회다웠던가
입력 2009-12-27 17:59
2009년은 참으로 다사다난하였다. 세계적인 경제 금융위기와 함께, 사이코패스라는 전문용어를 일반인들에게까지 알린 강호순 살인사건과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용산에서의 비극이 연이어 우리에게 충격과 아픔을 주었다. 미국에서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가 백악관에 입성하는 역사적 변화가 시작되는 무렵이었기에 우리의 마음은 더욱 착잡하였다.
이러한 사건들을 통하여 기독교계는 인간성 상실과 공동체 붕괴로 인한 사회적 위기극복이 이 시대의 우선 과제임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교회는 물질주의와 쾌락주의를 넘어서는 진정한 가치정립과 인간 존엄성을 담보하는 영성회복을 토대로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였다. 한국교회사회봉사단을 조직하여 태안반도의 생태계 회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용산 참사의 치유를 위하여서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이 그 예이다.
영적 가치의 소중함 인식
새해 벽두의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사회는 김수한 추기경의 선종이라는 또 다른 사건을 경험하였다. 한겨울, 5일의 장례 동안 줄지어 조문한 40만의 인파와 지상파 3사의 장례과정 생중계는 오늘날 한국사회가 얼마나 정신적, 영적 가치와 세계를 갈구하며, 사회통합의 리더십을 소망하는지를 반영하였다. 특별히 개신교회는 한국 가톨릭 수장의 삶과 죽음에 대한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통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실추된 신뢰와 이미지의 회복에 대해 더욱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우리사회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은 두 전직 대통령인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이다. 특별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적인 자살은 그의 죽음을 둘러싼 논쟁과 갈등을 그의 삶만큼이나 치열하게 전개시켰으며, 보수와 진보의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상존하는 갈등구조를 드러내면서 갈등의 치유자요, 소통의 매개자로서 교회가 감당하여야 할 역할과 과제의 버거움을 실감케 하였다.
특별히 기독교계는 바로 이즈음 정치적 논쟁에 묻혀서 자칫 그 중요성이 간과될 수 있었던 사건인 ‘존엄사 논쟁’에 주목하였다. 아직도 생존하고 계신 할머님의 생명력이 상징하듯이 인간의 생명은 존엄사라고 하는 그럴듯한 수식어로 제한될 수 없는 초월적 토대를 가진다.
이른바 ‘삶의 질’과 ‘행복추구권’을 주장하면서 생명마저 수단화하는 이 시대의 풍조는 생명경시가 이 시대 위기의 핵심에 있음을 알린다. 연이은 연예인들의 자살과 직전 대통령마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상황에서 한국기독교계는 생명의 존엄성을 이 사회에서 확고히 붙들고 설득함을 시대적 과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2009년 기독교계가 여러 면에서 사회적 역할을 감당하기 위하여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교회 공동체가 사회통합을 위하여 충분한 위로와 소통의 역할을 다하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기독교계의 현실은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소통과 화해의 중재자로서 평가받기에는 많은 아쉬움을 갖게 한다.
교계의 내부적 갈등도 해결하지 못하고 일반 사회법정에 판단을 의뢰하는 현실, 때로 화해보다는 사회적 갈등의 한 축에 섬으로써 교회에 대한 대사회적 신뢰도와 이미지를 저하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위로와 소통의 역할 다해야
2009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실시한 교회에 대한 사회의 신뢰도 조사에서 나타났듯이 한국 사회는 한국 교회에 대하여 적지 않은 실망감과 아쉬움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사회적 역할에 대하여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독교계는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새해에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자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교회의 교회됨을 회복하여,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의 아픔을 치유하는 한국 기독교계를 소망한다.
임성빈(장신대 교수· 기윤실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