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종회] ‘소나기 마을’의 가르침

입력 2009-11-25 18:00


한일월드컵대회로 온 나라가 ‘조국 체험’을 새로이 한 2002년 그해 겨울,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의 일이다. 일단의 문인들이 송년 모임으로 인사동 한 음식점에 모였다. 좌중에서 누군가가 내 스승인 황순원 작가의 단편 ‘소나기’가 경기도 양평을 무대로 한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대학과 대학원 시절 오랜 제자이며 황순원 문학 연구자이기도 한 나는 그 답을 잘 몰랐다.

그날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와 황순원전집 3권 ‘학/잃어버린 사람들’을 꺼내 들고 ‘소나기’의 공간 환경을 찾았다. 거기 딱 한 줄, 이런 기록이 있었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간다는 것이었다.” 그랬구나. 막연히 경기 일원의 농촌 지역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이름 있는 소설의 배경이 양평이었구나. 기실 황순원 선생 생전에 제자들은 그분을 모시고 양평으로 자주 야외수업 등의 나들이를 가곤 했다. ‘나무와 돌, 그리고’ 같은 단편에서는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가 주요한 소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사석의 대화가 문학공원 결실

그로부터 아주 긴 생각과 노력, 양평에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을 만드는 일이 시작되었다. 양평군수와 협의하고, 또 황순원 선생이 23년 6개월을 재직한 경희대학교가 참여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2003년 6월 양평군과 경희대학교는 자매결연을 맺었으며, 그 부대사업으로 소나기마을 건립을 추진키로 합의했다. 사석에서 가볍게 오간 대화와 구상이 한국 최대의 문학공원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데는, 2009년 6월까지 꼭 6년이 소요되었다.

중요한 것은 문학관의 외형이 아니라 그것을 채우는 콘텐츠였고 그 내실의 단단하고 충실한 정도였다. 황순원의 문학세계 전체를 다시 조사하고 연구하여 이 콘텐츠를 구성하는 데 3년이 걸렸다. 그리고 이를 구체화하는 문학관과 테마파크를 건립하는 데도 3년이 걸렸다. 적지 않은 난관이 있었다. 하지만 함께 참여한 이들은, 한국문학에 ‘순수와 절제의 미학’을 이룬 작가를 생각하면서 묵묵히 애썼다. 양평군도 최선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소나기마을은, 황순원의 ‘소나기’라는 이름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에 감동이 생성되는, 저 고색창연한 정서적 반탄력에 빚지는 바 크다.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소설, 어린 시절의 기억과 첫 정의 아름다움이 수채화처럼 배어 있는 소설이 ‘소나기’이다. 모두가 이 작품과 더불어 문장과 문학을 배웠고, 연륜이 더해갈수록 그 아련한 정감이 더욱 그리워지는 소설이다. 소나기마을은 이와 같은 해맑은 동심의 세계와 소중한 과거로의 회귀를 원본 그대로 살리려는 정신을 담았다.

소설의 수숫단 모양을 본떠 3층으로 지은 문학관에는 작가의 생애와 작품, 작품을 시청각 시스템으로 형상화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한 설비들이 잘 짜인 구조 속에 배치되어 있다. 각기의 방에는 중앙 홀, 작가와의 만남, 작품 속으로, ‘소나기’ 속으로 등의 호명이 부여되어 있다. 그리고 ‘소나기’의 스토리 종결 이후를 다시 구성한 애니메이션 ‘그날’을 상영하는 ‘남폿불 영상실’이 있다. 방문자를 위한 ‘마타리꽃 사랑방’은 작가의 문학을 시각·청각·촉각으로 만나는 다면 체험의 공간이다.

처음 순수성 잃어 사단난다

문학관을 나서면 오른편에 작가의 유택이 있고 2만평이 넘는 야산이 황순원 문학공원으로 구성되었다. 겨울철 외에는 공원 중앙의 소나기광장에서 하루 몇 차례 인공 소나기를 맞을 수 있다. 공원 전체를 채우고 있는 원두막, 수숫단, 산책로, 들꽃밭 등이 몸과 마음의 쉼터로 마련되었다. 이곳에 가면 누구나 세속의 분진을 씻어내고, 부드럽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심성을 회복하고 돌아오게 된다.

요즘처럼 4대강이나 세종시로 시끄러운 세상의 논란들은, 잘 들여다보면 결국 처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생기는 사단이다. 왜 그래야 할까. 조금만이라도 자기편의적 해석과 잘 포장된 욕망을 내려놓으면 한결 쉬울 텐데. 문을 연 이래 매일 많은 사람들이 소나기마을을 찾는 이유는, 거기에 문제들의 답이 있기 때문이다.



김종회(경희대 교수· 국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