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찬규] 대청해전과 동해 NLL
입력 2009-11-18 17:59
지난 10일 대청해전이 있은 뒤 13일 남측에 보낸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북측 대표단 단장 명의의 전통문에는 “서해에는 오직 우리가 설정한 해상 군사분계선만이 있다. 지금 이 시각부터 그것을 지키기 위한 무자비한 군사적 조치가 취해지게 될 것”이라는 구절이 들어 있다. 이것은 휴전협정이 발효된 다음 달인 1953년 8월 유엔군 측이 설정해 지금까지 실효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인정치 않고 1999년 9월 12일 인민군 총참모부가 설정한 ‘조선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실력으로 관철하겠다는 뜻이다.
휴전협정에는 한반도 상에만 군사분계선이 있을 뿐 바다에는 없다. 그리하여 서해 5도와 북한 연안 사이에 해상 군사분계선을 설정함으로써 휴전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휴전협정이 발효한 다음 달 유엔군 측이 일방적으로 그은 것이 NLL이다. NLL은 설치 목적이 정당했을 뿐 아니라 육상 군사분계선이 끝나는 지점에서 서해 5도와 북한 연안의 대략적인 중간선을 따라 그은 선이기에 설치 방법 또한 합리적이었다.
휴전 후 20년이나 아무말 없더니
이에 대해 북한 측은 그것이 북한의 동의 없이 그어졌을 뿐 아니라 휴전협정에도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그 효력을 부인한다. NLL에 대해 북한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1973년 12월 1일이다. 그날 열린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에서 북측 수석대표 김풍섭 소장이 NLL의 일방적 설정을 근거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이의를 제기하기까지의 20년 동안 북한이 NLL에 묵종(默從)해 왔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는 휴전협정 체결 당시 괴멸 상태에 있었던 북한 해군이 재기하는 데 20년의 세월이 흘렀어야 했다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법적으로 의미 있는 사유가 되지 못한다. 지난 20년간 북한의 해·공군이 수없이 NLL을 무력화하려고 했다는 주장도 묵종의 법리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휴전협정 상 공인된 대화 채널은 군사정전위원회이기에 이곳을 통한 공식적 이의제기가 아니면 반대 입장 표명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년간 이어진 묵종에 의해 북한은 NLL에 대항할 수 있는 법적 능력, 즉 대항력(opposability)을 상실했으며 이로써 그것은 휴전협정 체제의 일부로 굳어졌다. 남북 간에는 1992년 2월 19일 발효한 기본합의서가 있고 9월 17일 발효한 불가침 이행 합의서가 있다. 후자에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합의한다. 해상 불가침 구역은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제10조), 이것은 북한도 NLL이 휴전협정 체제의 일부가 되었음을 인정한 증좌다. 따라서 1999년 9월 12일 그들이 설정했다는 ‘조선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은 휴전협정 체제에 대한 도전이며 이를 실력으로 관철하겠다는 그들의 공언은 중대한 휴전협정 유린이라고 할 것이다.
휴전협정 체제 중 회자(膾炙)되지 않는 것에 동해 NLL이 있다. 동해 해상 군사분계선인 동해 NLL 역시 휴전협정 상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남북한 합의에 의한 것도 아니다.
北 NLL 부인은 협정 유린행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어엿한 해상 군사분계선으로서 제 구실을 다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극히 불리하게 되어 있다. 동해에서 남북한은 지리적으로 대향관계가 아닌 인접관계에 있기에 경계선은 당연히 등거리선이어야 하는데도 동해 NLL은 육상 군사분계선이 끝나는 지점에서 지도상의 위도선에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육상 군사분계선이 끝나는 지점에서 등거리선을 긋게 되면 그 방향이 위도선보다 월등히 북쪽으로 향하게 되어 북한에는 불리하지만 우리에겐 유리하게 된다. 서해 NLL과 동일한 여건의 것임에도 자기에게 유리한 동해 NLL에 대해선 말이 없는 북한의 작태는 감탄고토(甘呑苦吐)의 전형이다. 북한이 국제 사회에서 대접받으려면 국제 규범을 지켜야 함은 물론 만사에서 설명이 가능한 행동을 보여야 할 것이다.
김찬규(경희대 명예교수·국제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