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지난 지금도 슬픔은 그대로 남아 있어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고인의 영정을 바라만 보면 안타까운 마음에 일이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지난해 9월11일 전세계를 경악시킨 세계무역센터(WTC) 테러로 유일한 한국주재원 희생자를 낸 LG화재 뉴욕지점의 윤성호 본부장(45)은 당시의 참혹했던 경험을 담담하게 회고했다.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부인 49번가에서 만난 윤본부장은 지난해 9·11 테러로 숨진 고 구본석 지점장(당시 42세)에 이어 지난 2월부터 이곳에서 근무중이다. 당시 구지점장은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 84층에 입주해 있던 사무실로 출근하다 테러에 이은 건물 붕괴로 희생됐다. 구지점장의 부인 조윤호씨(39)가 고인의 시신을 찾지 못한 채 뉴욕시 당국이 유족들에게 나눠준 사고현장의 흙 한줌만을 안고 장례를 치렀지만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아직까지 구씨의 신분증만 발견된 상태다.
테러로 희생된 구지점장과 윤본부장은 1983년 LG화재에 함께 입사한 동기생. 입사시절부터 함께 붙어다녀 친형제처럼 절친하게 지냈던 이들은 윤씨가 1994년 뉴욕지점장으로 부임한 뒤 4년이 지난 1998년 구지점장이 후임자로 뉴욕에서 근무한 우연 아닌 우연도 갖고 있다.
“누구보다 가까웠던 사이였기에 고인의 유족 못지않은 충격을 받았지만 사고 수습을 위해서는 마냥 슬퍼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현지 사정을 잘 파악하고 있어 지난해 테러직후 뉴욕에서 사고수습대책위원장을 맡기도 한 윤씨는 그만큼 슬픔도 더했다고 말했다.
테러 1주년을 맞는 LG화재 뉴욕지점은 아직도 그날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맨해튼 중심부로 사무실을 옮겼지만 당시 함께 근무하던 공수호 과장과 직원 이은경씨는 “악몽을 꾸는 기분”이라며 비극을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사고 직후 3개월 동안 사고현장을 떠나지 않은 채 남편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던 조씨는 얼마전 뉴저지 크레스킬로 집을 옮겼다. 이때 구지점장의 장녀 세희양이 “아버지 손때가 묻은 곳을 떠나면 어떻게 하느냐”며 흐느껴 주위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현재 LG화재 뉴욕지점 직원은 윤본부장을 포함해 모두 4명. 이들은 이달초 구지점장의 영정을 다시 사무실에 차려놓았다. 9·11 테러 1주년을 맞아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다. 11일에는 유족과 구자준 LG화재 사장 등 임직원들이 참석,뉴저지주에서 추모식을 가질 예정이다.
윤본부장은 “비록 세상은 떠났지만 구지점장이 남긴 추억들은 유족을 비롯한 모든 임직원의 가슴속에 항상 살아 숨쉴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남혁상기자
LG화재 뉴욕지점 “악몽을 딛고”
많이 본 기사
국민일보가 꼼꼼히 읽어보고 선정한
오늘의 추천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