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산업이 만날때] 음반기획자 이수만씨

입력:200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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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만(48).각 세대마다 그는 다른 이미지로 기억된다.70년대에는 인기가수였고 80년대에는 유명 MC였으며,90년대에는 HOT를 키워낸 음반기획자로 이름을 날렸다.그렇다면 2000년대 그의 도전분야는? “연예계쪽 일을 시작하면서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이 TV 프로그램 제작과 인터넷 방송국을 차리는 거였어요.이제 그 목표에 거의 다 왔습니다” 이달 말쯤 그는 연예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프로젝트를 발표할 예정이다.하나는 TV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SM TV 프로덕션’을 설립하는 것이고,또 하나는 인터넷 방송국 ‘ilikepop.com’을 오픈하는 것이다.두 곳 모두 일본에서 가장 많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는 요시모토 그룹과 손잡는다.요시모토 그룹은 드라마와 버라이어티 쇼 등 다양한 TV 프로그램을 만들뿐만 아니라 자체 인터넷 방송국 ‘판당고’를 운영하는 곳.이 곳과 일본의 통신회사 KDD,이수만의 ‘SM 엔터테인먼트’에 투자해 온 ‘아시아 벤처’까지 모두 네 개의 회사가 함께 참여하게 된다. “일본에 ‘SM 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인 ‘SM 재팬’을 세울 거예요.지금은 일본에서 발매되는 SES의 음반이 일본 레코드사에서 나오고 있지만 이제 SES나 다른 우리 회사 가수들의 음반을 ‘SM 재팬’에서 직접 발매하는 겁니다.가수들을 우리와 제휴한 요시모토 그룹의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면 자연스럽게 홍보가 이뤄질 것이구요” 거침없이 사업계획을 쏟아놓는 그의 모습은 과연 가요계 최고의 흥행사로서 손색이 없다.이수만이 현재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사업체는 모두 5개.10대들의 우상 HOT와 소녀 트리오 SES,7명으로 구성된 소년팀 ‘신화’와 듀오 ‘플라이 투 더 스카이’를 스타로 길러낸 음반사 ‘SM 엔터테인먼트’가 모체다.이들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SM 엔터프라이즈’와 음반기획사 ‘라이크 플래닝’이 아웃소싱을 하는 형태로 ‘SM 엔터테인먼트’를 받치고 있다.그 외 소속가수들의 캐릭터 사업과 팬클럽을 관리하는 ‘스타 월드’,음반판권을 관리하는 ‘SM 퍼블리싱 컴퍼니’가 있다.지난해 이들 회사가 팔아치운 앨범판매량은 12월에 발매된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음반을 제외하고도 350만장에 가깝다.매출액으로는 모두 125억원에 달한다. “지난 3월부터는 일본의 ‘에이벡스(Avex)’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팝 음반도 내고 있어요.‘에이벡스’는 일본 최고의 프로듀서 고무로 데스야의 음반을 발매하는 댄스 전문 레이블이에요.일본 음반이 개방되면 우리 회사가 아무로 나미에 같은 고무로 사단의 음반을 독점 발매하게 되죠” 이수만이 벌인 일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SM 엔터테인먼트’를 코스닥에 올린 것이다.지난 27일 엔터테인먼트 회사로는 처음으로 코스닥 시장에 등록해 액면가 500원짜리를 1만2천원에 거래를 시작했지만 최근엔 한주당 2만원을 웃돌고 있다. “막상 외국에 나가보니까 우리나라 불법음반 얘기나 하고,한국 연예계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더라구요.그때 ‘에이벡스’ 사장이 우리 회사가 코스닥에 올라가 국가가 인정하는 기업이 되면 그런 고민이 없어질 거라고 조언해 주더군요” 원래 가수로 출발했던 이수만이 엔터테인먼트 사업으로 눈을 돌리게 된데는 5년 간의 미국 유학 생활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서울대 농업기계공학과 재학 중에 ‘행복’으로 가요대상을 받으며 인기를 누렸던 그는 80년대 초에는 자기 이름을 딴 ‘이수만쇼’라는 토크쇼를 진행하며 MC로도 전성기를 누렸다.하지만 81년 방송 통폐합 때 TV 쇼 프로그램이 대거 줄어드는 것을 보고 연예쪽은 더 이상 전망이 없다는 생각에 유학을 결심했다.처음엔 음악을 포기할 생각으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링 석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당시 막 출범했던 미국의 케이블TV가 그의 길을 다시 한번 바꿔놓았다. “그때 청소년들이 MTV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마이클 잭슨이나 ‘듀란듀란’처럼 예쁘장한 얼굴에 춤 잘 추는 가수에게 열광하는 걸 보았습니다.앞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저렇게 비주얼적인 가수가 성공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학위를 받고 나자 미국 현지회사에서 당시로서는 꽤 큰 3만 달러의 연봉을 제시하며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지만 이수만은 그대로 귀국길에 올랐다.유학생활 동안 얻었던 빚을 해결하고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태원 디스코테크에서 DJ를 하고,방송활동을 재개하는 한편 인천 월미도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87년 SM기획을 설립했다.첫 작품인 포크가수 한동준을 거쳐 ‘더 클래식’의 김광진,댄스가수 현진영,유영진 이후 HOT를 선보이기에 이른다. 이수만의 성공비결은 음반 기획에서 홍보,매니지먼트까지 한 회사에서 도맡는 가요계의 주먹구구식 운영을 탈피해 음악 프로듀서와 비지니스를 분리시킨데 있다.일본의 ‘자니스 프로덕션’이나 미국의 ‘자이브’처럼 가수의 컨셉트 설정과 캐스팅,훈련,마케팅의 전 과정을 철저한 전문화와 분업을 통해 준비한 것이다.지금은 거의 모든 음반기획사가 그가 시작한 90년대식 스타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제 캐치프레이즈는 ‘세계로 뻗는 연예인 사업’입니다.‘아시아 네트워킹’이 목표예요.다른 아시아 엔터테인먼트사들과 손잡고 할리우드에 아시아 전체를 대표하는 에이전시를 여는 것을 구상중이죠.일본은 자기네 마켓이 충분히 크니까 외국으로 연예인을 내보낼 생각을 안하고,중국은 아직 수준이 떨어지니까 우리나라가 중계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겁니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10대들의 감성을 꿰뚫는 음악을 만들고,또 동시에 연예계 최고의 경영 마인드를 자랑하는 이수만.주철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이수만의 탁월한 감별력이 HOT를 낳았다’고 말했던 것처럼 그는 천부적 감각을 갖춘 야심가임이 분명하다.[권혜숙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