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배탄 세딸 ‘예술 항해’/“멋진 합동무대 약속”세계적 발레리나 강수진,부천시향 하프주자 언니 여진,독일 프랑크푸르트음대 동생 혜진,세자매가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도란도란 예술과 꿈을 얘기했다.
우리 문화계에는 부부 부자 모녀 등 예술가족이 많지만 자매가 모두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지난달 뉴욕 데뷔공연의 대성공으로 명실상부한 월드스타로 떠오른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주역 발레리나 강수진씨(31)의 세 자매.부천시향의 하프주자이자 서울하프솔리스트 멤버로 활약하고 있는 언니 여진씨(33),독일 프랑크푸르트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과정에 적을 두고 예후디 메뉴인 재단 소속 하프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동생 혜진씨(29).여름휴가를 맞은 수진씨가 지난 4일 서울에 온데 이어 막내 혜진씨가 13일 합류,세 자매가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들 세 자매는 딱 한 차례 같은 무대에 선 적이 있었다.94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첫 내한공연 당시 수진씨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역으로 금의환향했을 때다.당시 부천시향이 연주를 맡아 여진씨는 자연스레 참여하게 됐다.독일 유학 중 때맞춰 귀국했던 혜진씨도 언니들의 무대에 함께 서기를 원했고,마침 하프가 두 대 필요해 ‘세 자매 합동공연’이 이뤄졌다.비록 한 사람만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두 사람은 오케스트라 피트 안에 앉아 있었지만 이날 무대 아래 위에서 이들이 나눈 벅찬 교감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수진이가 무대 앞쪽에 나와 춤을 추면 조금 볼 수 있었을 뿐이었어요.하지만 혜진이와 저는 굉장히 잘했다는 것은 금방 느낄 수 있었지요.오케스트라 피트 안에서도 객석의 소리와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거든요.슈투트가르트 입단 초기에 수진이가 뒷줄에서 군무를 하는 것을 보고도 가슴이 뛰었던 저로서는 동생의 놀라운 발전이 그저 감격스러웠을 뿐입니다”
세 자매 중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사람은 역시 ‘한국발레의 자존심’으로 일컬어지는 수진씨.특히 지난 7월8∼11일의 뉴욕 데뷔공연은 한마디로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뉴욕의 가장 콧대높은 무용평론가 안나 키셀고프가 ‘뉴욕타임스’에 쓴 리뷰는 수진씨에 대한 최상급의 찬사로 일관했다.“춤과 연기에서 단연 걸출함을 증명해보였다.…발끝 연기는 힘이 넘쳤고 토스와 리프트에서는 대담무쌍했다.…이날 공연은 ‘강수진의 쇼’였다” 뉴욕타임스뿐 아니었다.“객석의 모든 관객이 그녀에게 환호했다.관객들은 그녀의 가슴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뉴스데이),“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이번 공연은 이미 빛나는 왕관에다 또 다이아몬드를 달아준 것과 같았다”(뉴욕포스트).공연에 동행한 독일 기자들도 흥분하기는 마찬가지.‘강수진,빅 애플(뉴욕의 애칭)을 따다’(슈투트가르터 자이퉁)라고 대서특필하는 등 성공의 공을 그에게 돌렸다.“독일에 돌아가서야 뉴욕공연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뒤늦게 깨달았습니다.이번 공연의 성공으로 발레단이 2000년에 미국 투어를 초청받았지요.아직 공개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도 많은 제안을 받았습니다”
공연예술,특히 무용에서 뉴욕무대의 성공은 대단한 의미를 갖는다.그래서 ‘뉴욕에서 할 수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다’는 가사까지 등장할 정도.
맏이 여진씨는 국내 문화계의 유명인사로 꼽히는 스타다.서울대 음대와 네덜란드 왕립음악원을 졸업하고 91년부터 실력파 집단으로 정평이 나있는 부천시향의 하프주자로 활동하면서 서울하프솔리스트의 멤버로 실내악 운동도 펼치고 있다.그는 하피스트로서뿐 아니라 방송진행자로도 명성을 날렸다.빼어난 미모에 차분한 말솜씨로 MBC의 ‘일요예술무대’,KBS의 ‘문화가 산책’ 등 방송사들의 간판 문화프로그램을 맡아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현재 한양대와 중앙대에 출강중.
막내 혜진씨는 이제 막 음악가의 길에 들어섰다.서울대 음대를 거쳐 슈투트가르트음악원(석사)을 수석졸업하고 프랑크푸르트음악원의 박사과정 마무리단계에 있는 그는 빈 국제하프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한 재원.지난 학기에 칼스루에음악원 강사로 발탁됐고 97년부터는 예후디 메뉴인 재단 소속 연주자로 활약하고 있다.바이올린의 거장 메뉴인이 젊은 음악가 후원과 음악을 통한 사회봉사를 위해 만든 이 재단은 병원 교도소 부녀보호시설 등을 대상으로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다.혜진씨는 오케스트라에서 경험을 쌓은 뒤 독주자로 활동할 계획이다.독일에서 수진씨의 주요 공연을 빠짐없이 보고 매운 코멘트를 하는 깐깐한 모니터이자 SBS의 기획프로그램 ‘세계의 유행음악’ 샹송편에서 리포터로 활약한 방송인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이들의 가계가 궁금해진다.예술에는 노력만으로는 되지않는 천재의 영역이 있는 만큼 세 자매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재능을 지녔다면 당연히 가져봄직한 의문.짐작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이들은 다름아닌 근대회화사 초기의 거장이자 ‘한국의 로트렉’이라고 불리는 구본웅의 외손녀들이다.할아버지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흠모했던 어머니 구근모씨가 일찍이 세 자매 모두에게 예술의 길을 열어줬다.
이들은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마치고 본격적인 합동무대를 생각한 적이 있었다.언니와 동생이 하프 듀오를 연주하고 거기에 맞춰 수진씨가 발레를 추는 춤과 음악의 만남.아름다운 세 자매가 천사의 악기를 연주하며 천상의 춤을 선보이는 무대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세 자매는 합창했다.“완벽한 무대를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이 설 때”<글 이은경·사진 신종오 eklee@kukminilbo.co.kr>
발레 월드스타… 언니·동생은 하피스트/강수진 세자매
많이 본 기사
국민일보가 꼼꼼히 읽어보고 선정한
오늘의 추천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