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공권력에 맞선 「상징」/권양노동운동가와 행복한 가정… 미서 여성학공부/문경장실직·사업실패·은둔생활… 문민경찰에 큰교훈86년7월5일 인천지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고발장이 접수됐다.
『문귀동은 권인숙양에게 뒷수갑을 채운 후 브래지어를 위로 들어올리고 바지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리더니…권양이 「제발 이러지 말라」고 애원했으나 문은 들은 체도 않고 「너같은 X 하나 여기서 죽어도 아무일 없다」며…우리는 이 사건이 여성에 대한 성고문수법을 사용한 범행이며 더욱이 피의사실에 관한 수사가 아닌 수배자의 검거수단으로 이와같이 끔찍한 범행이 자행되었다는 점을 중시한다…』
그해 6월4일 밤9시쯤 경기도 부천에 봉제공장 근로자로 일하던 권인숙양(당시 25세·서울대4년 제적)이 부천경찰서에 연행돼 사흘만에 구속됐다.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을 이용해 부천시내 모공장의 공원으로 위장취업한 혐의(공문서변조 등)였다.그로부터 한달 뒤인 7월2일 오후 인천지역구속자가족 30여명은 부천경찰서로 몰려가 『문귀동경장이 여성해고근로자를 신문하면서 옷을 벗기는 등 추행했다』고 주장하며 농성을 벌였다.
이 농성 이후 「부천서 성고문사건」이라는 전대미문의 경찰범죄가 일반에 알려지기 사작했다.
권양은 당시 혐의사실 외에 「5·3인천사태」관련 수배자의 소재를 추궁당하면서 발가벗긴 채 부천경찰서 조사계 소속이었던 문경장(당시 41세)으로부터 성고문당했다.
결국 권양은 공문서변조 등 혐의로 13개월여동안 복역했고,문씨는 재판과정에서 성폭행 사실이 일부 인정돼 88년12월 징역 5년,자격정지 3년의 형을 확정받았다.
옥중투쟁을 통해 공권력의 불의에 저항했던 권양은 석방후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배상금 3천여만원으로 89년10월 서울가리봉동 5거리 부근에 「노동인권회관」을 설립해 근로자들을 상대로 상담과 교육을 하는 등 노동운동을 벌였다.체험을 담은 수기 「하나의 벽을 넘어서」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그해 9월 권양은 노동운동가 김상준씨(당시 29세·전서울대 총학생회장)와 결혼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학사제적된지 7년여만에 92년 특례재입학이 허용돼 학업도 마쳤다.지금은 부군 및 세살된 딸과 함께 94년1월 미국에 건너가 뉴욕에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있다.
성고문사건의 피해자 권씨가 안정을 찾은 반면 가해자 문씨는 깊숙한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동료경찰관 J씨(50)는 『당시 상황은 두 사람만 알 일이지만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리자면 윗사람들의 책임이 더 크다.어떻게 보면 시대의 희생물로 남의 눈을 피해 살아가는 문씨를 볼 때 동료로서 측은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문씨는 86년7월 파면당한 이후 퇴직금을 한푼도 못받고 10여년간 월급에서 공제한 적금과 보험금 등 4백여만원을 받았을 뿐이다.87년에는 살고 있던 29평형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은 돈 등 9천여만원을 들여 구두공장을 차렸다가 경험미숙에다 장마로 공장이 침수되는 바람에 7개월만에 문을 닫았다.
요즘은 어머니와 형이 한달에 한번 가져다주는 돈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기소되기 전 한때는 먼친척 형이 경영하는 주택업체 사무실에 나가 소일하기도 했다.그는 88년 형 확정후 5년여만인 93년 만기출소했다.
출소이후 전직경찰관들의 도움으로 부천중앙시장 부근 지하(80평)에 동업형식의 단란주점을 내기도 했지만 그 역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소유권을 넘긴 뒤 부천에서 은둔생활을 계속하고 있다.〈김도영〉
86년 부천서 성고문사건(그날이후…·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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