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칼럼] 서울 도심의 숨구멍을 틀어막는 불도저 행정

서울 공기가 다시 거칠어지고 있다. 한쪽에선 고층 빌딩이 천년 유산의 하늘을 가리려 하고, 다른 쪽에선 공사장 펜스가 도심의 숨구멍을 틀어막기 직전이다. 종묘의 고요와 여의도공원의 평온, 두 공간의 운명이 묘하게 닮았다.

1970년대 초 여의도는 허허벌판이었다. 한강 모래톱을 메워 만든 인공섬엔 건물이라곤 보훈회관과 순복음교회뿐이었다. 박정희정부는 5·16 쿠데타를 기념하는 광장을 만들고 군사 퍼레이드를 벌였다. 이 군사 권력의 상징을 시민의 품으로 되돌려준 이는 고(故) 조순 서울시장이었다. 그는 “도시는 강과 공원, 그리고 여백이 있어야 산다”며 광장에서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나무를 심었다. 그렇게 태어난 여의도공원은 시민들의 오아시스가 되었다. 점심시간이면 도시락을 들고 나와 걷고, 앉고, 숨을 고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봄이면 벚꽃을 흩날려 사람들을 설레게 했고, 눈 내리는 겨울엔 수묵화를 선사했다.

빌딩 위에서 공원을 내려다보면 도쿄의 히비야공원이 떠오르곤 한다. 일본 최초의 근대식 도시공원인 히비야는 도심 한가운데 고층빌딩이 빽빽이 들어서 있지만, 정작 그 안에는 높이 솟은 건물이 없다. 도시의 중심일수록 숨구멍처럼 비워둬야 한다는 게 히비야의 미학이다.

여의도공원은 이제 그 여백마저 ‘문화’를 앞세운 불도저에 허물어질 운명이다. 오세훈 시장은 제2세종문화회관을 여의도에 짓겠다고 발표했다. 원래 이 사업은 문래동으로 확정돼 있었다. 철공소가 밀집했던 문래는 폐공장을 개조한 갤러리,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공존하며 ‘서울의 브루클린’이라 불릴 정도로 독특한 문화공간으로 변신해 왔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 수제 만년필로 유명해진 업체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영등포구청장이 추진하던 문래동 계획은 ‘시민의 문화 기반’을 세우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시장이 바뀌자 방향도 바뀌었다.

같은 영등포구지만 여의도는 권력과 자본의 중심지다. 제2세종문화회관 부지변경은 부유층을 위한 행정이라는 비판으로 한동안 시끄러웠지만,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됐다. 어제 서울시는 ‘제1’ 세종문화회관에서 ‘제2’ 세종문화회관 국제설계공모 시상식을 열고 공식적인 공사의 시작을 예고했다. 오 시장은 “제2세종문화회관은 서울의 문화 중심을 도심에서 한강으로 확장하는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의 상징적 공간”이라고 자찬했다. 결국 문래 골목은 다시 찬밥이 되었고, 여의도 땅값은 오를 것이다.

그 개발의 그림자는 이미 여의도공원 위를 덮고 있다. KBS 맞은편에서는 지난 9월부터 2031년 완공을 목표로 광역전철 공사가 시작돼 직장인들의 산책 공간을 헤집어 놨다. 내년 12월 착공해 2029년 준공 예정인 제2세종문화회관 부지는 일명 ‘어린왕자 동산’으로 연령 30년 가까운 소나무숲과 연못이 있다. 공원 설계를 맡았던 이는 최근 필자에게 “조용기 목사님이 산책하며 감상하실 수 있도록 한국식 정원을 배치했다”고 너스레를 떤 적이 있다. 농담일지 모르지만, 그만큼 시민의 안식처로 정착된 이 곳이 사라지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일 게다.

시민들은 언제까지 발전의 이름으로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가. 배차 간격이 1시간 30분으로 유람선이나 다름없는 한강버스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세뇌당해야 하고, 서부간선 지하차도는 통행료 2800원을 내고도 정체를 강요받고 있다. 이번엔 ‘그레이트 한강’이라는 이름의 대형 공사가 재차 불편을 요구한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왜 굳이 ‘회관’을 또 만들어 음악을 강요하려 하는가. 음악이 세금으로 세운 건물 속에서 의무처럼 소비해야 할 문화인가. 시민들이 절실한 것은 새 건물이 아니라, 숨 쉴 여백이다.

종묘 사정도 비슷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에서 불과 170m 떨어진 세운4구역에 초고층 건물을 허용한 서울시 결정은, 문화유산보다 부동산의 논리를 앞세운 행정이다. 동양의 파르테논이 수난당한다는 김민석 국무총리 지적처럼, 600년 역사를 품은 왕의 제단이 유리벽의 그림자 아래 놓이게 생겼다.

도시의 품격은 건물 높이로 재지 않는다. 서울이 ‘레알 그레이트 시티’가 되려면, 시민들의 리듬이 존중받아야 한다. 그 리듬을 깨는 불도저가 향하는 곳이 과연 시민들의 미래를 위한 것인지, 특정인의 미래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동훈 논설위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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