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 지진 피해 국가배상 여부를 놓고 다투는 소송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국가 책임을 인정한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국가배상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포항 지역사회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대구고법 민사1부(부장판사 정용달)는 13일 지진 피해를 본 포항시민 111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포항 지진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민사상 손해배상을 인정하려면 관련 기관 과실로 지진이 촉발돼야 하지만 원고들의 주장 중 국가배상청구와 공동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부분에서 과실이 부존재하며 이 사건 지진 촉발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 이유를 밝혔다.
이어 “지열발전사업 과정에 물 주입에 의한 (촉발) 지진이 발생했더라도 원고들 주장만으로는 공무원이나 관련 기관의 과실 부분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쟁점 사항인 포항 지진이 관련 기관 과실 때문에 촉발된 것인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폈다. 재판부는 지열발전사업 터 선정 과정에서 지진을 촉발할 수 있는 활성단층의 존재를 파악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미소 진동 관리 방안 수립이 늦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2017년 11월과 2018년 2월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이 지열발전사업과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피고가 원고들에게 각 200만~300만원의 위자료를 줘야 한다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포항 지진 소송은 역대급 배상액과 참여 인원 등으로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특히 자연재난에 대한 국가 책임 여부와 범위 등을 판단할 수 있는 선례를 남길 재판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범대본) 등에 따르면 포항 지진 소송에 참여한 인원은 49만9881명(지난해 3월 기준)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진 발생 당시 인구(51만9581명)의 96%에 해당한다. 1심 판결 유지 시 1조5000억원 정도 배상금이 예상됐고 법정 이자율까지 포함하면 2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하지만 원고 패소 판결로 모든 예상이 빗나갔다.
포항시와 시민들은 강하게 반발하며 상고 입장을 밝혔다. 모성은 범대본 공동대표는 판결 직후 기자회견에서 “말도 안 되는 판결에 50만 포항시민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고 즉시 상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포항시도 입장문을 내고 “시민 모두가 바랐던 정의로운 판단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깊은 유감을 표하며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시민 상식과 법 감정에서 크게 벗어난 결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포항 북구 흥해읍 주민 박지은(58·여)씨는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지진으로 7년 가까이 겪은 피해와 정신적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는 결과를 기대했는데 허탈하다”고 말했다.
포항·대구=안창한 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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