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역사상 최고 흥행, 한국 최초 에미상 수상…. 화려한 수식어를 뒤로 하고 황동혁(54) 감독은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큰 부담을 안고 만든 작품이라, 이제는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아 후련하고 시원합니다.” 시즌3를 끝으로 ‘오징어 게임’의 완결을 선언한 그를 3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근황을 묻자 황 감독은 “최근 치아 2개를 더 빼서 한쪽으로밖에 음식을 못 씹어 불편한 상태”라고 털어놨다. 시즌1 제작 당시 과로와 스트레스 등으로 치아 6개가 빠졌는데 시즌2·3를 만드는 과정에서 2개가 더 빠졌다는 것이다. 체중도 59㎏까지 빠졌다는 그는 현재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최대한 휴식을 취하려 한다고 전했다.
황 감독은 “시즌1 각본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6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오징어 게임’ 안에서 살았던 것 같다”며 “하루도 이 작품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오랜 기간을 함께한 작품이어서 떠나보내려니 섭섭한 마음이 든다. 언제 또 이렇게 큰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오징어 게임’을 통해 한국 대중문화계에 새 역사를 썼다. 전 세계가 ‘오징어 게임’ 열풍으로 들썩였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에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울려 퍼졌다. 2021년 9월 선보인 시즌1과 지난해 12월 내놓은 시즌2는 넷플릭스 전체 흥행 1위와 3위에 각각 올라 있다. 지난 27일 공개된 시즌3도 엇갈린 비평 속에 순항 중이다.
‘오징어 게임 3’는 반란 실패로 좌절했던 기훈(이정재)이 게임장에서 태어난 아기를 지키기 위해 다시 분투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한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스트리밍 순위를 집계하는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작품은 공개 직후 이틀 연속 넷플릭스 TV쇼 부문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미국, 영국 등 93개국에서 모두 1위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외신에선 “캐릭터들이 일차원적이고 예측 가능하다”거나 “시즌1의 풍자와 날카로운 메시지가 사라졌다”는 등의 혹평이 나오기도 했다. 시청자 반응도 썩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미국 영화·드라마 평점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에서 비평가가 점수를 매긴 토마토 지수는 83％를, 시청자 점수인 팝콘 지수는 51％를 기록 중이다.
황 감독은 “불만족하는 반응도 이해되고, 어느 정도 예상했다”고 했다. 그는 “‘오징어 게임’은 엄청나게 극단적이고 폭력적이며 잔인한 이야기인 만큼 호불호가 있는 게 당연하다”며 “그에 비해 과분하게 사랑받아서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시즌3에 대한 반응이 다양한 이유로는 ‘기대치’를 들었다. 그는 “돌이켜보면 시즌1은 아무런 예상도 기대도 안한 상태였기에 놀라움과 신선도가 컸던 거 같다. 그런데 시즌 2·3에서는 보는 분들의 기대감이 다 달랐다. 사회비판적 메시지에 집중하는 분들이 있는 반면 게임이나 캐릭터를 기대하는 분들도 있었을 거다. 관점에 따라 좋아할 수도 실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각에선 하나의 서사를 이루는 시즌2·3을 나눠 공개한 것이 몰입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황 감독은 “무리했으면 시즌2·3의 에피소드 13편을 모아 올해 한꺼번에 공개했을 수도 있지만 관객의 콘텐츠 소비 호흡이 짧아진 터라 저도 넷플릭스도 그렇게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며 “시즌2부터 다시 한번 봐주시면 고맙겠다”고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황 감독은 애초에 해피엔딩을 구상했다고 한다. 생각을 바꾼 건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그는 “세상은 어렵고, 먹고살기는 더 힘들어지고, 전쟁과 불평등의 위기가 닥친다. 혁명에 의해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잖느냐”며 “그렇다면 우리가 다음세대를 위해 더 가지려는 욕심을 멈추고 내려놓아야 하는 게 아닌가. 희생과 양보가 필요한 시대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국판 스핀오프(파생작) 제작과 관련한 외신 보도에 대해선 “루머”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미국판 제작에 대해 공식적으로 전달받은 내용이 없다”며 “만약 저한테 상의도 안하고 (제작에) 들어가면 황당할 것 같다”고 웃었다. 다만 미국판 연출자로 거론된 데이비드 핀처 감독에 대해선 “제가 워낙 좋아해서 정말 그분이 맡는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도와 드리겠다”고 전했다.
할리우드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카메오로 깜짝 등장하는 후반부 장면에 대해선 “한국의 게임은 끝났지만 세상 어디선가는 이 강고한 시스템이 여전히 진행 중일 거라는 암시를 보여드리고자 했다”며 “대사 한마디로 화면을 장악할 수 있는 배우가 누구일까 했을 때 역시 케이트 블란쳇밖에 떠오르지 않아 섭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황 감독의 다음 행보는 아직 미정이다. 그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3~4년 전에 구상했는데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어서 수정할 부분이 많다”며 “나는 영화를 만들던 사람이라 극장 영화로 돌아가고 싶다. 그런데 영화시장이 너무 처참할 정도로 어려워져 두려움이 있다. 누군가의 투자를 받아 이윤을 낼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고 토로했다.
시즌1으로 ‘방송계 오스카’로 불리는 미국 에미상 시상식 감독상을 거머쥐었던 그가 다시 한번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을까. 황 감독은 “큰 기대는 안 한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는 “후보에만 올라도 감사할 것 같다. ‘오징어 게임’을 통해 모든 감정들을 다 경험해봤기에 이제는 다 내려놓게 됐다. 저에게 다가올 일들을 겸손하게, 겸허하게 받아들이려한다”고 말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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