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세영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 딥시크 이어 너자2 돌풍… 中소프트파워 ‘연타석 홈런’

중국 애니메이션 영화 ‘너자2’의 돌풍이 거세다. 중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관객 수 2억명, 흥행 수입 120억 위안(약 2조386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미국 등 해외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중국은 ‘저비용 고성능’ 인공지능(AI) 모델 딥시크에 이어 ‘너자2’로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중국 관영 언론과 누리꾼들은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가 주름잡던 중국 영화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은 데서 나아가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세계에 보여줄 절호의 기회라고 본다. ‘애국주의’ 누리꾼들은 작품 속 천상계에 맞서는 너자의 모습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을 떠올리게 한다며 ‘n차 관람’ 인증과 함께 열광적 지지를 보낸다.

너자2는 중국 고전소설 ‘봉신연의’를 각색한 작품으로 손오공이 활약하는 ‘서유기’와 세계관이 유사하고 등장인물도 일부 겹친다. 주인공은 마동(魔童) ‘너자’로 2019년 개봉한 1편이 너자의 탄생 스토리라면 2편은 성장 스토리다.

너자2는 지난달 29일 개봉해 9일 만인 지난 6일 중국 역대 흥행 1위에 올랐다. 지난 8일에는 흥행 수입이 10억 달러(1조4400억원)를 기록하며 비할리우드 영화 최초로 ‘빌리언 클럽(billion club)’에 합류했다. 단일 시장에서 최초로 10억 달러 이상 수입을 올린 영화라는 기록도 세웠다. 이전 최고 기록은 2015년 미국·캐나다에서 9억3600만 달러를 벌어들인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였다.

13일에는 관객 수 2억명과 함께 흥행 수입 100억 위안을 돌파했다. 17일에는 흥행 수입이 121억2100만 위안(16억7100만 달러)을 기록해 전 세계 영화 역대 박스오피스 9위에 올랐다. 비할리우드 영화가 10위 내에 진입한 것은 너자2가 처음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중에선 미국의 ‘인사이드아웃2’(16억9900만 달러)에 이은 세계 2위인데 1위 등극이 유력하다.

중국 영화 예매 사이트 마오옌은 너자2의 총수입이 160억 위안(3조1800억원, 22억 달러)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역대 전 세계 애니메이션 영화 중 1위, 전체 영화 중에선 ‘타이타닉’ 다음인 5위에 해당한다.

너자2는 13일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개봉한 데 이어 14일 미국 등 북미 시장에서도 정식 상영을 시작했다. 해외 배급사 화런에 따르면 너자2는 북미에서 총 700개 상영관, 호주·뉴질랜드에서 총 116개 상영관을 확보했다. 중국 배급사가 최근 20년간 이들 지역에 배급한 중국 영화 중 가장 많은 숫자다.

신화통신은 “너자2가 해외 영화 시장에 상륙해 세계 관객들에게 중국 애니메이션의 풍모와 중화 문화의 매력을 선보였다”고 보도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영화 전문가인 장펑 난징사범대 부교수를 인용해 “너자2는 전 세계에 중국 영화 산업의 부상과 문화적 소프트파워 성장을 보여주는 창문을 제공했다”고 전했다.

너자2가 중국 당국이나 누리꾼의 ‘밀어주기’로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고화질 3D 그래픽을 구현한 첨단 영상 기술과 압도적인 스케일의 화면 구성, 탄탄한 스토리, 개성 있는 캐릭터가 시너지를 냈다.

이 작품 제작에는 5년간 4000명 이상의 인력이 투입됐고 특수효과 장면만 1900개가 넘는다. 제작에 참여한 138개 애니메이션 회사 중 외국 회사는 단 한 곳도 없다. 자오쯔 감독은 중국중앙TV 인터뷰에서 “해외 기업들에 특수효과를 의뢰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며 자국 기업들에게 작업을 의뢰한 배경을 설명했다.

너자2는 중국인에게 익숙한 고전을 각색하면서도 전형적 영웅이 아니라 친근하면서도 개성 강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작품 곳곳에 미국의 탐욕과 패권주의를 비꼬는 요소를 녹인 것도 흥행 요소다. 천상계의 중심으로 등장하는 ‘옥허궁’은 미국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을 연상케 하고 신선이 먹는 금단을 만드는 ‘연단로’에는 미국 달러화 기호가 새겨져 있다. 옥허궁을 지배하는 무량선옹이 금선봉회에서 9000개의 금단을 나눠주는 장면은 미국의 2023년 국방비 지출이 처음으로 9000억 달러를 돌파한 것과 이어진다.

미국의 국조인 독수리가 그려진 천상계 특별통행증 ‘옥패’는 미국 영주권인 그린카드를 떠올리게 만들고 무량선옹이 너자에게 건네는 알약은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생겼다.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이라는 야유로 해석될 수 있다.

너자2 제작·배급사인 광셴촨메이는 중국 소프트파워 전략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이 회사 창업주 왕창톈은 중국 신화와 고대소설을 바탕으로 ‘중국판 마블’을 만든다는 목표 아래 2015년 애니메이션 제작 전문 자회사 차이탸오우를 설립한 뒤 22편의 애니메이션 목록을 만들어 제작에 들어갔다.

CNN은 “경기 침체 속에 너자2의 엄청난 성공은 국민적 자부심과 환희의 물결을 일으켰다”면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주도해온 중국 영화 시장에서 최근 수년 동안 액션부터 공상과학, 로맨스, 애니메이션까지 중국 영화가 서양 영화를 앞지르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영화의 성공 요인으로 문화적 자부심의 증대, 정교한 스토리텔링, 빠른 기술 발전을 꼽았다.


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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