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난치성 전립선암에 ‘방사선 미사일 치료’가 뜬다

장모(67)씨는 2012년 전립선암 판정을 받았다. 진단 때부터 다발성 전이가 있어 수술이 힘든 상황이었고 항암, 항호르몬 치료는 모두 실패했다. 다른 치료 옵션이 없는 벼랑 끝 상황에서 장씨는 최근 국내 허가된 방사성 표적 신약 '플루빅토' 치료를 시도키로 했다. 지난달 중순 첫 투약 후 장씨의 컨디션과 검사 결과 둘 다 안정적이다.
장씨처럼 더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는 난치성 전립선암 환자들에게 '방사성 표적 치료제'가 유일한 희망이 되고 있다.

전립선암은 2021년 기준 폐암 위암 대장암에 이어 4번째로 남성이 많이 걸리는 암이다. 초기 전립선암은 5년 생존율이 약 99%로 높지만 폐, 간 등으로 원격 전이될 경우 46%로 뚝 떨어진다. 전립선암의 10~20%는 5년 이내에 항암은 물론 호르몬 치료에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전이가 진행되는 이른바 ‘거세 저항성 암’이 된다. 2021년 전립선암 환자 1만8697명으로 추산하면 약 1870~3739명이 이에 해당한다. 최근 연구에서 이런 환자들은 최상의 표준 치료를 받더라도 평균 생존 기간이 11.3개월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5월 글로벌 제약사의 혁신 신약 ‘플루빅토’가 국내 도입돼 전이성(4기) 전립선암 환자들에게 돌파구가 마련됐다. 이 약은 ‘방사성 리간드 치료제’로 불리는데, 암세포 표면에 발현되는 특정 단백질이나 효소, 수용체에 들러붙는 특정 분자(리간드)와 방사성 동위원소를 결합한 형태다.

전립선암의 80% 이상에서 발견되는 표적 단백질 ‘전립선특이막항원(PSMA)’에 선택적으로 붙어서 강한 방사선을 내뿜어 암을 파괴하는 방사성 동위원소 ‘루테튬-177’을 결합해 만든다. 임상시험에서 대조군보다 무진행 생존 기간이 배 이상 연장됐고 질환 진행 및 사망 위험을 60% 줄인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계는 표적 병변에 도달한 후 방사선을 방출해 암세포를 사멸시키기에, 정밀하게 표적을 겨냥한다는 의미로 ‘방사선 미사일 치료’라는 별칭을 붙였다.


플루빅토 치료를 받으려면 먼저 전신에 퍼진 전립선암 병변을 찾아내는 진단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에너지가 다소 약한 방사성 동위원소 ‘갈륨 68’과 결합한 화합물을 활용해 PET-CT(양전자방출단층촬영) 검사를 진행한다. 주입된 갈륨 68 화합물이 전립선암 PSMA를 정확히 찾아가 전이된 암을 영상에 표시해 준다. 의사는 PET-CT 영상으로 PSMA 양성을 확인한 뒤 플루빅토를 주사해 암을 치료하게 된다.

이처럼 방사성 의약품을 활용해 치료(Therapy)와 진단(Diagnostics)을 한꺼번에 하는 ‘테라노스틱스(Theranostics)’적 접근이 근래 난치암과 희귀암 극복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상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해 10월 테라노스틱스 센터를 국내 처음으로 개설했다. 현재 15개 의료기관 핵의학과에서 PET-CT로 전립선암 PSMA 진단이 가능하다. 플루빅토 치료가 가능한 곳은 국립암센터와 서울아산, 서울대, 분당서울대, 세브란스, 성빈센트, 칠곡경북대 병원 등 7개 기관으로 아직은 많지 않다. 진단용 방사성 동위원소의 경우 자체 제조가 가능해야 하고 방사선 노출 위험이 있는 만큼 안전시설과 전문 인력이 갖춰진 곳에서만 취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립암센터 등 3곳에서 지금까지 모두 6명의 환자가 치료를 시작했고 다수가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 치료는 복잡한 단계를 거친다. 방사성 동위원소인 루테튬-177의 반감기는 6.6일로 짧다. 진단 과정을 거쳐 치료 대상이 정해지면 환자 맞춤형으로 플루빅토의 제조 주문이 들어가고, 해외에서 제조된 제품이 항공편으로 국내 운송돼 실제 투여하기까지 5일 안에 끝나야 한다. 플루빅토는 6주 간격으로 최대 6회까지 맞을 수 있다.

지난 8월 50대 거세 저항성 전립선암 환자에게 국내 최초로 플루빅토 치료를 시작한 국립암센터 정재영 비뇨기암센터 교수는 4일 “두 번째 치료까지 진행됐는데, 뼈 전이로 침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했던 환자가 전신 통증 등 주관적 증상이 현저히 좋아졌다고 말한다. 가파르게 올랐던 전립선 수치(PSA)도 완만해졌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핵의학과 이동윤 교수는 “2명의 환자에 대해 이제 막 치료를 시작한 단계라 효과를 평가하기엔 이르나 일단 첫 사이클 진행한 상황에선 급성 부작용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방사성 리간드 치료제(RLT)는 이미 상용화된 사례가 있다. 같은 글로벌 제약사가 희귀암인 위장 및 췌장 신경내분비종양 환자들을 위한 루타테라를 개발해 201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판매 승인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2020년 7월 허가를 받았고, 2022년 3월부터 건강보험도 적용됐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췌장 신경내분비종양으로 이 치료를 받아 화제가 된 바 있다.

국내외 많은 제약사가 방사성 의약품(RPT)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특정 암세포만을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만큼, 주변 정상 세포에 미치는 피해가 적다는 장점 때문이다. RLT도 RPT의 일종이다. 이동윤 교수는 “적절한 용량이 투여되면 치료 효과는 높지만 전신 부작용은 일반 항암제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치료법”이라고 설명했다.


활용되는 방사성 동위원소와 치료 질환을 넓히는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악티늄-225, 아스타틴-211, 토륨-232 등 희귀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해 신경내분비종양과 전립선암뿐 아니라 악성 림프종 갑상샘암 유방암 육종암 교모세포종(뇌종양) 소세포폐암 소아암 등을 치료하는 임상 연구 및 제약사의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거나 계획되고 있다.

한국원자력의학원 임일한 박사는 “루테튬-177보다 방사선 에너지가 강한 악티늄-225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임상 연구를 진행 중이며 신경내분비종양 4명, 전립선암 2명을 치료했다. 한 신경내분비종양 환자는 악티늄 치료 후 간 전이 병변이 크게 줄어드는 등 좋은 성적을 보인다. 해외에선 드물지만 암세포가 사라지는 완전 관해 사례도 보고돼 있다”고 말했다.

이동윤 교수는 “현재는 모든 항암 치료를 다 소진한 후에 방사성 표적 치료제 적용이 가능하나 추가로 진행 중인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성이 입증되면 이보다 앞 단계 치료로 점차 옮겨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진행된 전이암 환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치료 옵션이며 고령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에서 선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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