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개편을 추진 중인 두산그룹이 두산에너빌리티 주가 하락에 울상을 짓고 있다. 현재 주가 수준에선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늘어나 분할합병이 무산될 공산이 크다. 두산에너빌리티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배임 논란을 피하기 위해 매수 청구를 선택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두산이 지난 11일 발표한 지배구조 개편안의 핵심은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 두산밥캣을 떼어내 두산로보틱스에 병합하는 것이다. 두산은 두산에너빌리티의 재무구조를 개선해 투자 여력을 확보하고 두산밥캣은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 글로벌 업체와 경쟁하고자 한다. 하지만 지배구조 개편에 성공하려면 두산에너빌리티의 주주들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분할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가진 무기는 주식매수청구권이다. 주식회사의 합병·영업양도 등 주주의 이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주총회의 결의에 반대하는 소수 주주는 보유한 주식을 특정 가격에 회사가 매수할 것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31일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는 1만8830원으로 마감했다. 지난 11일 지배구조 개편 발표 당일 주가(2만1850원) 대비 14% 하락한 수준이다. 현재 주가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2만890원)의 90% 수준이다. 행사가에서 주가를 뺀 만큼의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보니 주주들의 청구권 행사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주식 매수 한도로 6000억원을 설정했다. 전체 주식의 4.5%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이를 넘어서면 회사는 분할합병을 해제하거나 계약을 변경해야해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중단된다.
두산에너빌리티 지분 6.78%을 보유 중인 국민연금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 역시 커지고 있다. 김광중 법무법인 클라스한결 변호사는 “두산이 지배구조 변화에 따른 미래 가치 비전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합병 안건에 반대하지도 않고, 주식매수청구권도 행사하지 않는다면 배임 이슈가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국민연금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 합병이 무산된 사례가 있다. 지난 2014년 국민연금은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주가가 청구권 행사가격의 각각 83%, 93% 수준까지 떨어지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한도를 뛰어넘는 규모로 주식매수청구권이 행사되면 두산에너빌리티는 매수 금액을 늘리거나 분할합병 계획을 철회해야만 한다. 그러나 올해 1분기 기준 두산에너빌리티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6669억원 정도다. 대부분을 매수 금액(6000억원)에 사용하는 셈이어서 사실상 이를 늘리기는 어렵다.
두산으로서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간(9월 25일~10월 15일) 이전까지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이 과제다. 두산 관계자는 “사업 개편 시 두산에너빌리티 차입금이 감소하고 사업 영역도 분명해지는 등 주주들에게 이익이 되는 측면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윤준식 기자 semipr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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