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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순대국밥 한 그릇

우성규 종교부 차장


정상무(59) 경기도 성남 수정교회 목사는 ‘일하는 목회자’다. 1인 가구가 많고 다가구주택이 밀집한 남한산성입구역 금광시장 앞에서 사모와 함께 ‘성남선순대국’을 운영한다. 테이블 7개의 작은 식당. 정 목사 부부는 오전 6시30분 교회에서 아침 예배를 드린 후 식당에 도착해 시장에서 그날 공수한 머리고기를 삶고 사골을 고아내며 정성스레 순대국밥을 준비한다. 정 목사가 국밥을 파는 건 큰길 건너편 언덕 위 상가건물 3층에 있는 교회에서 어린이들을 섬기기 위해서다.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소속인 수정교회는 어린이들이 중심인 개척교회다. 초등학교 교실 크기의 예배당엔 장의자 대신 접이식 의자가 한쪽에 놓여 있고, 중심엔 노트북, 드론, 대형 TV와 더불어 각종 과자와 컵라면, 음료수 등이 갖춰져 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2) 문구와 십자가만 없다면 놀이방이라고 해도 손색없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오후 학교 수업이 다른 날보다 일찍 끝나면 학원에 갈 때까지 시간이 남는 초등학생들이 이 예배당에 들어와 논다.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고 TV로는 걸그룹 영상을 보며 춤을 추고, 드론 날리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오후 시간엔 순대국밥 식당이 브레이크 타임이다. 정 목사는 “교회 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아이들이 상가 1층 편의점 앞에 머물다가 학원을 가게 된다”면서 “제가 정말 바쁘면 도어록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아이들끼리 들어와 예배당에 머물게 한다”고 말했다. 교회를 온전히 아이들 놀이 공간으로 내놓은 것이다.

정 목사는 지난해 11월부터 매달 20인분의 순대국밥을 따로 준비한다. 7개의 테이블 가운데 2개는 벽을 보고 앉는 자리다. 순대국밥을 전하면서 가난한 이 동네에 유독 홀로 밥을 먹는 중장년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저녁시간에 고단한 몸을 이끌고 식당에 들어와 소주 한 병에 순댓국 한 그릇을 비우고 가는 남성 가운데 한 분이 홀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정 목사는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홀로 사는 분들에게 비록 몇 그릇 안 되지만 순댓국을 대접하고 싶다고.

1인 가구 급증과 더불어 홀로 죽음을 맞는 이른바 고독사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주민센터는 반색했다. 주민센터는 쿠폰을 만들어 인근 혼밥족 중장년들에게 일련번호를 적어 나누고 이들은 언제든 편한 시간에 식당에 들러 순대국밥을 비운 뒤 다른 손님들과 구분되지 않도록 계산할 때 카드 대신 쿠폰을 내고 나간다. 주민센터에선 한 달에 한 번 이 쿠폰을 회수해 1인 가구의 안위를 확인한다.

고독사 문제는 한국교회가 직면한 한국사회의 민낯이다. 저출산, 고령화 등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로 1인 가구가 급증했는데,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과 경기 불황으로 인해 관계 단절이 심화하면서 가족과 떨어져 혼자 밥을 먹고 홀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여러 정책으로 접근하지만 가족 역할을 하는 대안 공동체를 만들 수는 없기에 발을 동동 구르는 현실이다.

정 목사는 비록 작은 교회일지라도 국밥 한 그릇으로라도 도울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큰 교회는 큰 교회 나름대로 할 일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치솟는 집값으로 서울 거주를 포기한 청년들을 위해 교회가 교육관을 원룸으로 개조해 청년들을 머물게 한다면 어떻겠냐고 정 목사는 반문했다. ‘성남선순대국’은 지난 3일부터 재료비 인상으로 그동안 자제하던 국밥 가격을 1000원 올렸는데, 정 목사는 동시에 중장년 혼밥족에게 대접하던 국밥을 20그릇에서 30그릇으로 늘리겠다고 덧붙였다.

우성규 종교부 차장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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