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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부활하는 징병제

고승욱 논설위원


젊은이를 강제로 소집해 군대를 유지하는 현대적 의미의 징병제는 프랑스혁명 직후 수립된 제1 공화국에서 시작됐다. 1789년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시작된 혁명은 3년여 만에 루이 16세의 처형으로 이어졌다. 혁명의 전파를 막으려는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곧바로 연합군을 결성해 국경을 넘었다. 혁명이 전쟁을 불러온 것이다. 의용군으로 버텼던 혁명정부는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이 참전하자 곧바로 총동원령을 선포했다. “적들이 공화국 영토에서 쫓겨날 때까지 프랑스 국민은 군 복무를 위해 영구적으로 징발된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연합군은 8만명이었다. 영국, 스페인이 참전했지만 해군 중심이었다. 그래도 혁명정부는 45만명 규모의 군대를 만들기 위해 18~25세 미혼 남성을 전국에서 모집했다. 농민의 반발이 컸고, 탈영병도 속출했지만 징집자는 첫해 36만명, 이듬해 110만명이 넘었다. 이 군대가 바로 네덜란드를 점령해 바타비아공화국을 세우고, 유럽 강대국과 동시에 싸워 승리한 프랑스 혁명군이다. 그 승리의 영광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에게 돌아갔다. 유럽을 호령한 나폴레옹은 현대적 징병제의 가장 큰 수혜자였던 것이다.

이후 각국은 징병제를 경쟁적으로 도입했다. 칼과 창으로 싸울 때는 전문적 훈련을 받은 직업군인이 최고다. 하지만 이미 총과 대포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시대가 열렸다.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농민을 3개월만 훈련시키면 유능한 전투병을 만들 수 있었다. 19세기 유럽이 세계를 식민지로 만들고 제국주의적 침략과 전쟁을 거듭한 배경에는 바로 징병제가 있었다.

그런데 냉전 종식과 함께 유럽 각국에서 차례로 사라졌던 징병제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되살아나고 있다. 느슨한 징병제를 유지했던 핀란드·노르웨이가 징병률을 높였고, 아예 폐지했던 스웨덴은 여성을 포함한 징병제를 다시 도입했다. 덴마크도 여성 징병제를 곧 시작키로 했고, 독일도 징병제 재도입을 논의 중이다. 전쟁의 시대가 다시 시작되는 것일까.

고승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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