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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전보에서 텔레파시까지

강주화 산업2부장


전보가 이달 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없어진다는 건 늘 뭔가 아쉽다. KT 전보 서비스가 종료되기 전 전보를 보내고 싶었다. 설날을 앞두고 멀리 사는 지인에게 전보를 썼다. ‘새해, 새로 온 해와 함께 행복하고 새로 뜨는 달과 함께 평안하길!’

전보는 전선을 통한 신호로 메시지를 전달한 최초의 전기통신 서비스다. 국내에는 1885년 서울과 인천 사이에 전신 시설이 개통되면서 처음 도입됐다. 보내는 사람이 전보 송달지를 작성하면 우체국 간에 전화나 전신기를 통해 연락했고 수신한 우체국에서 전보지를 작성해서 받을 사람에게 전달했다. 1980년대 유선 전화기가 각 가정에 보급되기 전까지 가장 빠르게 소식을 전해주는 수단이었다. 전보가 나오기 직전에 살았던 이들은 인편으로 겨우 편지를 주고받았다.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제주도 유배지에서 아내 예안 이씨에게 쓴 한글 편지를 얼마 전에 읽었다. ‘경득이 돌아가는 편에 보낸 편지는 어느 때 들어갔소?… 자고 먹는 모든 것은 어떠하오?… 간절한 심려 갈수록 진정하지 못하겠소….’

추사가 1842년 11월 14일에 보낸 언간 일부다. 아픈 아내를 염려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아내는 이 편지를 보내기 바로 전날에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 추사는 이듬해 1월 15일 그러니까 거의 두 달 만에 아내의 부음을 들었다. 외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더 늦었을 것이다. 국내에 전보 서비스가 나오기 불과 40여년 전 일이다. 만약 전보라도 있었다면 추사는 아내의 죽음을 그렇게 늦게 듣진 않았을 것이다.

전보 서비스는 1950년대까지 비용이 많이 들어서 주로 관공서에서 사용됐다. 원조 국민 MC 송해는 생전에 한 방송에서 한국전쟁 당시 군복무 중 상부 지시로 정전 전보를 쳤다고 소개했다. “군사기밀이라고 했다. 덜덜 떨면서 전보를 쳤다. 내용은 ‘53년 7월 27일 22시를 기하여 모든 전선에 전투를 중단한다’는 것이었다.” 50년대 후반에는 타자 전신기가 생겼다. 75년 전보 이용건수는 6500만건에 달했다. 상경하는 어머니가 출발 전 자식에게 전보를 치던 시절이다. 전보의 전성기였다. 90년대 후반부터 휴대전화와 이메일 확산으로 전보 이용량은 급감했다. 현재는 ‘1인 1스마트폰’ 시대다. 통신사를 거치지 않고 개인이 직접 바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됐다. 카카오톡 앱에 원하는 메시지를 입력하면 바로 상대에게 간다.

지금 인류는 글자를 입력하거나 말하는 시간보다 더 빨리 메시지를 보내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인간의 뇌에 칩을 삽입하는 방식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2016년 설립한 뇌신경과학 스타트업 뉴럴링크는 최근 임상시험 대상자의 뇌에 ‘텔레파시’로 불리는 칩을 이식했다. 생각만으로 휴대전화나 컴퓨터 등 모든 기기를 제어할 수 있다고 한다.

이 기기가 상용화되면 생각과 동시에 의사를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의사소통 기술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발달하고 있다. 소통이 빨라질수록 우리의 대화는 더 깊어질 것인가. 카톡으로 대시하고 이별하는 요즘 소년소녀들이 며칠을 고민하며 연애편지를 쓰던 과거 청춘들보다 더 설렐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곧 과거가 될 전보가 미래의 텔레파시에 마지막으로 타전한다면. 왠지 그 메시지는 이럴 것 같다. ‘오늘의 슬픔은 마음을 전할 수단은 많아졌는데 따스한 메시지를 발견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소통의 기술이 무한히 발전하더라도 누군가에게 닿기 원하는 사람의 마음은 한결같기 바란다. 연결이 내일의 기쁨이 되길.’

강주화 산업2부장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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