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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주 칼럼] 기후동행카드, 변화의 시작

한승주 논설위원


서울시 기후동행카드 인기
국토부·경기·인천도 나오는데
종류 많고 사용 방법 헷갈려

수도권은 하나의 생활권
통합카드 못 만든 건
정부의 조정 능력 부재 탓

모델 된 독일 49유로 티켓은
치열한 정치적 합의에서 나와
우리도 수도권 통합권 내놔야

독일 뮌헨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평일에도 북적였다. 실제로 경험한 ‘도이칠란트 티켓’(49유로 티켓)의 위력은 대단했다. 승용차로 아우토반을 달리던 사람들이 기차를 타기 시작했다. 49유로(약 7만원)면 한 달간 독일 전역의 버스 지하철 기차가 거의 무료다. 지난여름 휴가지로 독일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이 티켓 때문이었다. 베를린 시내버스 기본요금이 3유로(4290원)임을 감안하면 한 달에 49유로는 유인책이 될 만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사람은 교통비가 줄어서 좋고, 승용차를 놓고 다니는 사람도 많아지면서 탄소 배출까지 줄어드니 일석이조다.

우리도 생겼다. 서울시 기후교통카드가 그것이다. 49유로 티켓을 모델로 했다. 가격도 비슷한 6만5000원이다. 한 달 정액권으로 버스 지하철 따릉이 등을 무제한 탈 수 있다. 열흘 만에 31만장이 팔릴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역시 교통은 실생활과 매우 밀접한 민생 현안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국토교통부와 경기도, 인천시도 오는 5월부터 각각 K패스, The경기패스, 인천I패스를 내놓는다. 모두 공공 대중교통 할인·지원카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비슷한 시기에 요금을 깎아주는 경쟁에 나선 것이다. 선거를 앞둔 포퓰리즘인지 혼란스럽다. 취지는 비슷한데 사용 범위와 방법이 달라 헷갈린다. 온라인에는 “하루 두 번 한 달 동안 21일 이상 이용해야 기후동행카드 효과가 있다” “서울시 외 지역에서도 혜택을 보려면 K패스를 기다려라” 같은 현실적인 조언들이 공유됐다.

기후동행카드는 기본적으로 서울시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 때문에 경기도와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약 200만명에겐 그림의 떡이다. 오히려 특별시민이 아니라는 상대적 박탈감을 안겼다. 수도권은 하나의 생활권인데,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순 없었을까. 수도권을 하나로 통합하는 교통패스를 만드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독일은 나라 전체에서 쓸 수 있는 티켓도 만들었는데 말이다. 정부의 조정 능력 부재 탓이 아닐까.

독일도 순탄했던 건 아니다. 보수와 진보 정당 간 치열한 정치적 합의 끝에 통합카드가 나왔다. 과정은 이렇다.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자 보수정당들은 휘발유 가격을 정부가 보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후보호를 중시하는 녹색당으로서는 아니 될 말이었다. 오히려 에너지 위기니까 고속도로 운행속도 제한을 요구했다. 자동차업계에 호의적인 자민당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었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던 의견은 결국 서로 한발씩 양보하며 절충안을 찾았다. 보수당들이 원하는 한시적 유류세 인하와 녹색당이 주장하는 9유로(1만2870원) 티켓을 동시에 한시적으로 도입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단돈 1만원 정도에 전국 대중교통을 거의 다 이용할 수 있다니! 9유로 티켓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에너지 위기와 기후 위기를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정책으로 해외에도 소개됐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에서 독일을 따라 했다. 올라프 숄츠 총리는 9유로 티켓이 지금까지 독일이 시행한 최고의 정책 중 하나라고 평했다. 이후 교통업계의 손실 보전금을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절반씩 부담하기로 하고, 가격을 합리화해 발전시킨 게 49유로 티켓이다. 좋은 정책이 있어도 여야가 싸우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서로 발목 잡는 우리 정치보다는 한결 성숙한 논의가 아닌가. 합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물가가 안정됐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80만t 줄었다.

대중교통의 획기적 확충은 기후변화 대책일 뿐 아니라 도농 격차 등을 완화할 수 있는 대책이기도 하다. 지방으로 갈수록 차 없이는 못 다니고 지방 노인과 청소년들은 이동권이 제한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대중요금 할인 카드가 성공하려면 우선 교통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 또 하나는 가격이다. 9유로 티켓의 성공에서 봤듯이, 기후동행카드는 지금보다 더 싸져야 한다. 월 3만원 정도면 차를 놓고 대중교통으로 갈아타는 이들이 꽤 많아질 것이다.

인구 절반이 몰려있는 수도권을 먼저 통합하고, 나아가 전국이 하나의 교통패스로 이용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여야가 예산 문제 등을 치열하게 논의한다면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교통카드 한 장으로 전국을 저렴하고 편리하게 다닐 수 있는 날을 상상해 본다. 기후동행카드는 그 변화의 시작이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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