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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 인공지능도 기적을 학습해야

박희준(연세대 교수·산업공학과)


인공지능은 과거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기에
그 의사결정이 과거 지향적일
수밖에 없어… 상식 파괴하는
창의적인 결정은 기대 힘들어

후회스러운 과거를 뒤로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기적을 꿈꾸기 때문

창의적 도전적 접근 통해 실패
극복한 사례를 부지런히 모아
인공지능이 학습하도록 하면
개천에서 용을 키워내지 않을까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며 극우 정당의 괴짜 정치인에서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떠오른 하비에르 밀레이가 장기 매매 합법화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자 세계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아르헨티나 대선을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최근 넷플릭스에서 화제를 모았던 공상과학 영화 ‘패러다이스’는 장기 매매에서 더 나아가 수명 매매를 소재로 다룬다. 호화 주택을 마련하기 위해 40년의 수명을 담보로 은행에서 융자를 받았던 30대 주인공은 자신의 과실로 화재가 발생해 집이 소실되자 보험사로부터 보상 한푼 받지 못한 채 담보로 잡힌 40년의 수명으로 채무를 변제한다. 그리고 갑자기 70대 노인이 되어버린 주인공은 수명을 주고받는 시술을 행하는 기업의 회장이 주인공의 유전자가 본인의 유전자와 일치함을 알고 주인공의 수명을 빼앗기 위해 파놓은 함정에 빠졌음을 알아차리고, 잃어버린 수명을 회장으로부터 되찾기 위해 혈투를 벌이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수명을 재화처럼 거래할 수 있게 되자, 가난에 지친 이들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삶보다 부자들에게 수명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짧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한 삶을 선택한다. 영화에서는 최소한 5년 이상의 수명이 거래되며 1년에 1억원 정도의 가격으로 매매가 이뤄진다.

누군가로부터 5억원을 받는 대가로 수명 5년이 단축된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남은 삶의 시간 동안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에 따라 선택은 달라지겠지만, 미래를 예측하기 쉽지 않은 만큼 선택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이 보다 발전하면 선택은 쉬워질 수도 있다. 미래의 범죄가 일어날 시간과 장소 그리고 범인까지도 예측해 범죄가 발생하기 전에 범인을 미리 체포해 감옥에 가두는 장면을 담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내용이 현실이 된다면 말이다.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대부분의 의사결정이 인공지능에 의해 이뤄지면,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부분의 변수 값이 분석돼 실패의 확률을 최소화하고 성공의 확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합리적 선택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 대한 해석도, 미래를 위한 선택도 과거의 틀 속에서 이뤄지면서 상식을 파괴하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의사결정은 기대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인공지능은 과거에 발생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유의미한 패턴을 찾아내어 미래를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만들기 때문에 의사결정은 과거 지향적일 수밖에 없다.

수십년 앞서 인공지능 시대가 열렸다면 현재 글로벌 1위 조선사로 성장한 현대중공업의 창업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조선소가 들어설 울산 바닷가의 흑백 사진과 지도 그리고 거북선 그림이 새겨진 500원권 지폐를 가지고 영국 은행을 설득해서 조선소 설립에 필요한 차관을 도입했던 고 정주영 회장의 전설적인 일화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지우고 싶은 시간이 있다. 그리고 더 나은 선택으로 그 시간을 채웠더라면, 더 많은 노력으로 그 시간을 채웠더라면 하는 후회가 남기도 한다. 이런 후회스러운 과거를 뒤로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기적을 꿈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시대가 다가오면 기적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모든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지는 디지털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실패의 확률을 낮추고 성공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 매 순간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투입된 만큼 성과가 만들어지고 보상이 주어지면 사회의 공정성은 향상될 수 있겠지만 성공은 또 다른 성공을, 실패는 또 다른 실패를 만들어 내며 양극화는 심화되고 형평성은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인공지능이 좀 더 고도화돼 대부분의 의사결정이 인공지능에 의해 이뤄지기 이전에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접근을 통해 실패를 극복하고 성공을 만들어낸 사례를 부지런히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기적을 학습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부터 십수년간이 골든 타임이다. 앞으로 십수년간 우리 사회가 만들어내는 현상들은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의 삶을 지탱할 틀이 될 것이다. 개천에서 용을 키워내는 인공지능을 만들어야 한다.

박희준(연세대 교수·산업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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