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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십자가 정신’ 회복이 교회의 살길

장창일 종교부 차장


한국교회의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다. 위기의 신호는 이미 199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교회는 6·25전쟁 후 30년 동안 황금기를 누렸다. ‘번듯하게 교회 지으면 교인이 모여든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때였다. 출석 교인이 1만명 넘는 교회가 하나둘 늘었던 것도 이 시기였다.

영광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교인 감소세는 점차 뚜렷해졌고 무리한 교회 건축으로 생긴 부채 때문에 무너지는 교회마저 생겨났다.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명목상 기독교인을 의미하는 ‘가나안 성도’가 100만명을 웃돈다는 말이 돈 것도 교세 감소세와 맞물린 대표적 현상이다. 오랜 침체 가운데 몇 해 전 코로나19를 만난 교회는 ‘모이지 못하는 현실’ 앞에 좌절했다. 교회를 어렵게 하는 위기 요인은 이뿐 아니다.

지금의 교회 인프라가 모두 교세 급성장기에 만들어진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 교단 중 은퇴 목회자 연금제도가 가장 잘 돼 있다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의 경우 초창기에 적게 내고 은퇴 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연금을 설계했다. 하지만 이를 유지하려면 새로 가입하는 초임 목사가 꾸준히 늘어야 했는데 이게 원활치 않다 보니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각 교단의 신학대도 마찬가지다. 성장기에 많이 필요했던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해 대학의 수와 정원을 모두 늘렸지만 현재는 정원 미달인 학교가 수두룩하다. 출석 교인 수와 비교해 큰 규모의 건물을 가진 교회도 비슷한 어려움에 부닥쳤다.

한국교회는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물론 과거의 일이다. 여전히 지난 시절 무용담에 매여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는 일종의 희망 고문으로, 급성장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오히려 현재를 직시해야 하는 눈을 가리고 있다. 교회에 뿌리를 두고 태동한 여러 이단도 전도에는 큰 장애물이다. 성장과 함께 여러 병폐가 생기면서 사회로부터 받는 비난도 짐이다. 이단의 발호와 교회를 향한 적대적 여론이야말로 교회를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드는 족쇄와도 같다.

장동민 목사는 자신의 책 ‘포스트 크리스텐덤 시대의 한국기독교’에서 교회 자신의 변화를 촉구했다. “현재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교회들은 ‘크리스텐덤 시대’에 형성된 교회들로 새로운 시대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의 형태와 습속, 더 나아가 메시지와 신학도 바뀌어야 한다.”

변화라는 과제가 생겼지만 교회가 빠진 고난의 늪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살길은 벗어나는 것뿐이지만 그게 쉽질 않아 보인다. 크리스텐덤은 생활과 종교, 정치가 하나로 통합되는 사실상의 기독교 왕국을 의미한다. 한국교회가 크리스텐덤 시기를 지난 듯하지만 사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상향이다. 과거라는 미련을 과감하게 털어내야 한다.

변화를 위한 방향성도 중요하다. 십자가를 앞세워 땅을 정복했던 십자군의 깃발을 다시 드는 건 오판이다. 대신 ‘십자가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2000년 전 예수가 달려 죽은 십자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희생과 사랑’이다. 교회는 이 위에 세워졌고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십자가 정신이야말로 교회가 시급히 회복해야 할 가치다.

언젠가 러시아 툴라에 있는 톨스토이의 무덤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작은 마을 야스나야 폴랴나에 있는 대문호의 무덤은 그의 명성과는 달리 초라했다. 잔디가 듬성듬성 덮여 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흙더미 아래에 그가 누웠다. 신앙인이었던 그의 무덤을 보는 관광객들이 그가 남긴 마지막 흔적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해 했던 기억이 난다. 삼중·사중 고난을 딛고 십자가 정신을 회복해야 하는 한국교회가 걸어야 할 길은 결국 가장 낮아지는 삶을 택하는 것이 아닐까.

장창일 종교부 차장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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