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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우크라이나의 청춘들

박지훈 종교부 차장


사내는 ‘고양이 킬러’로 불렸다. 10대 시절부터 특수 고양이 처단기로 매일 100마리 넘는 고양이를 죽였다. 사람들은 사내가 킬러가 된 이유를 이렇게 넘겨짚었다. 언젠가 대기근이 마을을 휩쓸었을 때 고양이들이 죽은 가족의 살점을 뜯어먹는 걸 본 뒤 앙심을 품게 됐노라고.

멸종 위기를 맞은 고양이들은 회의를 열었으나 어떤 해법도 별 소용이 없었다(당시 얼마나 이들의 사정이 딱했는지 회의엔 생쥐 사절단까지 위로 방문했다고 한다). 고민 끝에 고양이들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세상을 등지는 동료의 숫자만큼 새끼를 낳자고. 결국 고양이들은 밤마다 서로를 품었다. 주야장천 사랑을 했다. 고양이로 태어난다는 것은 오로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다는 뜻이 됐다. 킬러는 나이가 지긋해져서야 복수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킬러는 고양이들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겠다고 말했는데 그때 고양이들이 내놓은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단 하나의 희망을 가지기 위해 사랑했다. 희망은 당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며, 당신의 복수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며, 당신의 운명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지금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 단 하나의 희망을 위해 서로 사랑할 것이다. …서로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았지만, 당신은 이미 오래전에 죽어버렸다.”

이런 이야기는 소설가 김연수가 2010년 출간한 장편소설 ‘7번국도 Revisited’ 마지막에 등장한다. 최근 우크라이나 상황을 전하는 사진들을 보다가 오래전에 읽은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진들에는 조국을 위해 참전하려고 기차에 오르는 청년과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여인, 피난길에 오른 아내와 생이별하는 남편의 일그러진 얼굴, 차창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맞댄 애끊는 커플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마치 “단 하나의 희망을 가지기 위해”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 같았다.

유엔난민기구는 최근 우크라이나 난민 규모를 설명하면서 “지난 수십년을 통틀어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한 피난 행렬”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이 말을 들은 뒤부터 이역만리 우크라이나에서 펼쳐지는 많은 이별의 드라마와 전쟁이 발발하기 전 그 나라 청년들의 일상을 상상해보게 됐다. 물론 그들이 느끼는 작금의 가없는 슬픔을 정확히 짐작하기란 불가능한 일일 테지만 말이다.

아마도 전쟁이 터지기 전 우크라이나 청년들의 삶은 다른 나라 젊은이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청춘은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시간 앞에 서는 일이다. 시간이 지난 뒤 돌아보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것 같지만 그것의 한복판에 있을 때 청춘은 한없이 느리게 흘러간다. 김연수는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에 실린 대담에서 “시간이 아주 많은 사람을 청춘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런 말들을 쏟아냈다.

“청춘이란 시간이 아주 많이 남은 상태, 그래서 뭔가에 그 시간을 쏟고 나면, 심지어는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시간만 흐른다면 저절로 끝나게 되는 상태를 뜻한다고 생각해요. 해서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 때는 청춘을 알아볼 수가 없어요.” “시간이 하도 많아서 남은 시간 같은 것은 따져보지도 않는 사람들이 진짜 젊은 사람들이죠. 그래서 어떤 일에 자신의 전부를 걸 수도 있어요.” “젊었을 때는 천년을 살 수 있는 사람처럼 살았으면 해요.”

우크라이나에서는 지금 이 순간도 많은 이별의 장면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포성이 멎을 기미는 여전히 보이지 않지만 언젠간 지구촌의 많은 사람이 멋지게 해후하는 그 나라 연인들의 모습을 보게 될 거라고 믿는다. 그때쯤이면 우크라이나 청년들도 예전의 청춘을 회복하길, “시간이 하도 많아서 남은 시간 같은 것은 따져보지도 않는” 순간을 다시 만끽하길.

박지훈 종교부 차장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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