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3일 서울 양천구 목동힘찬병원 보호자대기실에서 박영규(73)씨는 TV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파란 수술복을 입은 의료진 대여섯명이 보였다. 그들이 둘러싼 수술대에 박씨 아내가 누워 있었다. 걸음이 불편해진 아내의 무릎수술을 위해 박씨는 서울 은평구에서 굳이 이 병원을 찾아왔다고 했다. 수술실마다 CCTV가 설치됐다는 얘기를 듣고서. “제가 보고 싶었어요, 수술 과정을. 대리수술 때문에 잘못된 일도 있었다니까….” 걱정 가득한 얼굴로 모니터만 쳐다보던 박씨는 수술이 끝나 의료진이 정리를 시작하자 그제야 웃음을 지었다.
수술실 CCTV 의무화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이 병원은 자발적, 선제적으로 CCTV를 설치했다. 전국 8개 지점을 둔 네트워크 병원인데, 지난 9일 인천 부평점에 이어 21일 목동점도 수술실 8개 모두 CCTV를 달고 운영을 시작했다. 지난달 인천의 다른 병원에서 대리수술 사건이 터진 게 발단이 됐다. 이 병원에까지 환자들의 수술 취소 문의가 잇따르자 전격적으로 수술실 CCTV 도입을 결정했다. 현재 정치권과 의료계에선 수술실 입구에만 설치하는 절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 병원은 수술실마다 수술대가 잘 보이는 내부 천장에 CCTV를 달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수술실 CCTV 찬성은 80%를 웃돌았다. 이런 여론은 CCTV 도입 후 이 병원 환자·보호자들이 보인 반응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대리수술 사건에 수술을 취소하고 대학병원으로 갔던 관절염 환자가 CCTV 설치 소식을 듣고 다시 와서 수술을 받았고, 아버지 척추수술을 모니터로 지켜본 아들은 “아버지가 무척 불안해하셨는데 이렇게 지켜보니 잘 몰라도 마음이 놓인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병원 관계자는 “수술 CCTV 시청을 원치 않는 보호자도 많은데, 대부분 ‘자신 있으니 설치한 것 아니겠냐’는 게 이유였다. 환자 신뢰를 되찾는 효과는 매우 컸다”고 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주 수술실 CCTV 설치법안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보류했다. 설치 위치와 의무화 여부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수술실 내부 의무화’(더불어민주당·환자단체) ‘입구 설치’(김부겸 국무총리) ‘입구 의무, 내부 자율’(국민의힘) ‘의무화 반대’(대한의사협회) 등 입장이 갈려 있다. 의료계는 일부 의사의 불법 행위로 전체 의사가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문제, 생명을 다루는 수술에서 CCTV로 인해 소극적 처치를 하게 될 가능성을 이유로 거세게 반대한다.
이수찬 힘찬병원 대표원장은 의협의 반대 입장에 공감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스스로 CCTV를 설치해야 했을 만큼 환자의 의료 신뢰도가 추락한 현실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런 CCTV가 없더라도 환자들이 의사와 병원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때 비로소 진정한 환자 인권이 확보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윤성호 기자 cyberco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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