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대란’의 늪에 빠진 문재인정부 집권 5년 차 모습이 노무현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과 판박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두 번 모두 집권 초부터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규제 일변도 정책을 펼쳤지만 부작용만 양산하며 시장에 완패했다. 부동산 민심 악화로 대통령이 집권 5년 차에 대국민 사과를 한 점도 똑같다. 임기 말 부랴부랴 공급 확대 기조를 내세웠지만 시장의 불신이 깊어져 정책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점도 비슷하다는 지적이다.
집권 5년 차 반복된 ‘부동산 사과’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벌써 두 차례나 부동산 문제로 고개를 숙였다. 지난 11일 신년사에서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께 송구한 마음”이라고 했고,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선 “결국 부동산 안정화엔 성공하지 못했다”며 실패를 인정했다. 집값 폭등이 계속됐던 지난해 신년사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던 것과는 달랐다. 임기 말 안정적인 국정운영 구상을 밝히는 자리에서 대통령이 거듭 사과할 만큼 부동산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여론을 수용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7년 1월 23일 신년 특별연설을 통해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는 죄송하다. 올라서 미안하고, 국민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하고 한 번에 잡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비록 사과 메시지는 내놨지만 정책 실패의 원인을 외부 환경 탓으로 돌리는 점도 비슷하다. 문 대통령은 이번 기자회견에서 “시중 유동성이 풍부해지고 부동산시장으로 자금이 몰리는 상황”이라며 “작년에 인구가 감소했는데도 61만 세대가 늘었다”고 했다. 저금리 상황과 가구 구조 예측 실패가 겹치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설명으로, 지난해 전세대란 당시 여권이 내세운 방어 논리와 같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1~2인 가구 증가 등 세대 분화론을 강조하는 것은 정책 실패를 감추기 위한 논리적 비약이라고 반박한다. 2019년부터 계속된 수도권의 세대 분화는 최근 집값 상승과 맞물린 청약시장 호황 탓에 세대를 분리한 것으로 공급 부족의 이유는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1인 가구가 전세보다 월세 비중이 높은 점은 세대 분화가 전세난의 원인이라는 여권 주장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서울 여성 1인 가구 주거 현황’에 따르면 20대 여성 1인 가구의 월세 비중은 69.1%, 30대 여성 1인 가구 월세 비중은 54.9%에 달했다.
노 전 대통령도 당시 집값 급등 원인에 대해 “부동산을 한 번에 못 잡은 것은 반대와 흔들기 때문”이라며 집값 상승을 부추긴 언론과 투기세력을 탓했다. 또 “수출이 많아져 유동성이 풍부해졌는데 유동성 관리를 못한 것”이라고 했다.
‘투기세력이 문제’라는 안일한 판단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투기세력과 다주택자만 잡으면 된다는 논리에 사로잡혀 시장의 수요·공급 원칙을 무시했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정책 기조를 고집한 결과는 ‘벼락 거지’ ‘영끌 매수’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정도의 집값 급등과 시장 혼란이었다.
정부는 오는 6월부터 다주택자 종부세 최고세율을 기존의 2배 수준으로 높이고, 1년 미만 보유 주택을 팔면 70% 양도소득세율을 적용키로 하는 등 다주택자를 겨냥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집값 상승세는 계속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할 때마다 조정대상지역 확대 등 수요 억제책을 폈으나 풍선효과로 비규제 지역 집값이 상승하는 부작용이 잇따랐다.
노무현정부 당시에도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시장에 역행하는 정책이 쏟아졌다. 서울 강남 재건축 투기 수요를 막으려고 시행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는 주택 공급을 막는 결과를 낳았다. 서울 강남3구와 목동, 경기도 분당·용인·평촌 등을 집값 거품이 심한 ‘버블 세븐’ 지역으로 지정해 집중적으로 규제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특히 고위 공직자들의 실언이 매번 성난 민심에 불을 질렀다. 노무현정부 청와대의 이백만 홍보수석은 2006년 11월 브리핑에서 정부 대책을 믿어 달라며 “비싼 값에 지금 집을 샀다가는 낭패”라고 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문재인정부에서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에 출석해 공급 대책을 묻자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고 말해 ‘마리 빵투아네트’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국민 불신 속 공급정책 약발 먹힐까
문재인정부는 올해 들어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지난 4년간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경험한 국민의 신뢰 회복은 요원해 보인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지난해 12월 1주(12월 1~3일 조사) 39%를 시작으로 올해 1월 2주(1월 12~14일 조사)까지 4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 기간 주간 부정평가율은 모두 50%를 웃돌았는데, 부정평가 이유 1위는 모두 부동산 정책이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는 노무현정부 임기 말인 2007년 초반과 흡사하다. 한국갤럽이 2007년 2월 19일 조선일보 의뢰로 실시한 조사에서 ‘노무현정부에서 가장 잘못한 일’을 묻는 말에 부동산 정책이 26.9%로 1위를 차지했다. 2위 ‘부적절한 언행’(15.0%)과 격차가 컸다. 당시 노무현정부도 집값이 급등하자 2006년 수도권 신도시 공급 주택 물량 확대(11·15 대책), 2007년 실수요자 중심 청약제도 개편(1·11 대책) 등 안정화 방안을 내놨지만 성난 민심을 돌리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설 연휴를 앞두고 서울 도심 공공재개발 등 획기적인 공급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20일 “다주택자가 집을 팔게 해 시장을 안정화해야 하는데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며 “현 정부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백상진 이현우 기자 shark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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