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라시도 도밍고(사진)가 30년간 최소 27명의 여성에 대해 부적절한 성추행을 했다는 미국오페라노조(AGMA)의 조사결과 발표 이후에도 유럽 오페라계가 후속 조치에 미온적이다. ‘미투 불모지’ 러시아를 비롯해 서유럽의 주요 극장에서는 여전히 도밍고를 무대에 세울 계획이다.
AGMA가 지난달 24일 조사결과를 발표한 후 도밍고는 다음날 “내가 여성들에게 입힌 상처를 미안하게 여긴다는 점을 진심으로 전하고 싶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지난해 8월 AP통신의 보도 이후 줄곧 의혹을 부인하던 입장을 바꾼 것이다. 하지만 도밍고가 입막음을 위해 AGMA에 50만 달러(약 6억800만원)를 기부 형식으로 주려 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도밍고의 사과는 진실성 논란을 일으켰다.
가장 먼저 칼을 빼든 것은 도밍고의 조국 스페인이었다. 스페인 문화부는 5월 14~15일 마드리드의 국립 사르수엘라 극장에서 열리는 ‘루이사 페르난다’에 플라시도 도밍고의 출연을 금지한다고 26일 발표했다. 성추행 의혹 이후 도밍고의 출연을 취소했던 미국과 달리 무죄 추정원칙을 적용해 도밍고의 출연을 막지 않았던 유럽 공연계에서 처음으로 나온 퇴출 조치여서 큰 파장이 일었다. 스페인은 그동안 도밍고를 감쌌지만 문화부 발표 이후 마드리드의 테아트로 레알 등 여러 오페라하우스에서 도밍고의 출연이 취소됐다.
스페인의 강력한 조치를 의식한 듯 도밍고는 성추행 의혹을 다시 부인하고 나섰다. 하지만 미국 워싱턴 내셔널 오페라(WNO)가 지난 2일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에서 도밍고의 이름을 지우기로 결정했고, 영국 로열오페라는 6일 도밍고가 7월에 예정됐던 ‘돈 카를로’ 공연에 출연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영·미권과 스페인을 제외하면 유럽 오페라계는 여전히 ‘친(親) 도밍고’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도밍고는 오는 22, 26일과 다음 달 2일 독일 함부르크 슈타츠오퍼의 ‘시몬 보카네그라’에 출연한다. 함부르크 슈타츠오퍼는 “스페인 문화부 발표 이후 다른 오페라극장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을 냈다. 6월 ‘라 트라비아타’와 ‘나부코’ 등 2편에 도밍고가 출연하는 오스트리아 빈 슈타츠오퍼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볼쇼이극장과 독일 뮌헨 슈타츠오퍼는 각각 4월과 7월 공연에 예정대로 도밍고가 출연한다고 발표했다. 한술 더 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은 5월 ‘백야 축제’에 도밍고를 새롭게 캐스팅 했다고 5일 발표했다.
‘미투의 불모지’로 불리는 러시아는 그렇다치더라도 인권의식이 높은 서유럽에서 도밍고의 퇴출이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용숙 오페라평론가는 “법률적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보수적으로 대응하는 유럽 공연계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면서 “오페라하우스의 결정권자 상당수가 도밍고와 막역하다. 이들은 예술가에겐 다른 도덕적 기준이 적용됐던 구시대의 인물들이라 변화에 더디다”고 지적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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