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봄 대형산불로 어려웠는데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수해가 덮쳤습니다. 예측하기 어려운 재난이 연거푸 닥치니 하늘이 원망스럽다는 말뜻을 실감합니다.”
폭우로 산사태가 난 경남 산청군 산청읍 부리마을. 20일 오전 10시쯤 부리마을 비탈길 위쪽 ‘내부부락’에서 만난 주민 노명수(70)씨는 전날 상황을 차마 다 표현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노씨가 굉음과 진동을 느끼고 집 앞 와룡산 줄기에 산사태가 발생한 사실을 확인한 것은 전날 오전 9시10분쯤이었다. 이 산사태로 노씨의 이웃인 70대 부부와 20대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노부부는 농사와 함께 마을 안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노후를 보내던 중이었고, 20대 여성은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쉬러 들렀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씨는 “지반이 약해지지 않았나 걱정하며 마을을 둘러보다가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집으로 피신했다”며 “그때 천둥 치는 듯한 소리와 진동이 울리더니 전기가 퍽 하고 나갔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마을 아래쪽 외부부락에서 위쪽 내부부락으로 오르는 비탈길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맥없이 뽑힌 나무들의 뿌리와 잔해들이 밀려내려온 토사 및 바위와 범벅이 돼 널브러져 있었고, 여전히 흙탕물이 콸콸 흘러내렸다.
노씨는 “살아남은 게 다행일 정도로 평생 처음 보는 무지막지한 집중호우였다”고 말했다. 외부부락 김성문(73)씨도 “비가 쏟아지고 산이 무너지기까지 워낙 순식간이라 대피하고 손을 쓰고 할 겨를도 없었다”고 전했다.
산청읍내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산청시장은 침수된 물건들을 씻고 닦는 상인들만 분주할 뿐 일반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한 60대 상인은 “사상 유례없는 ‘전 군민 대피’라는 조치에 군민 전체가 충격을 받았다”며 “비는 그쳤지만 사망하신 분도 많고 대피 소동도 아직 가라앉지 않아 어수선하다”고 말했다. 산청군에선 사상 초유의 전 군민 대피령이 내려졌다.
산청은 지난 3월 대형 산불이 난 지역이다. 당시 산불로 지반이 약해졌고, 그 여파가 이번 집중호우로 연결돼 산사태 등으로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야말로 기후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16일부터 쏟아진 ‘극한호우’로 닷새간 17명이 숨지고 10명이 실종됐다. 이 중 산청에서만 산사태 등으로 10명이 숨지고 4명이 실종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호우 피해 상황에 대한 신속한 파악과 조속한 특별재난구역 선포를 추진하라”고 지시했다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광주 북구 하신마을 딸기 육묘장 침수 현장을 방문해 “정부는 침수 농가가 조속히 재기할 수 있도록 피해 복구 지원과 함께 생계 안정, 영농 재개를 위한 현실적이고 신속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산청=이임태 기자, 김용헌 최예슬 최승욱 기자 si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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