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에 사는 홍락표(71)씨는 지난해 매달 생계급여 26만원과 기초연금 25만원 등 총 51만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 올해는 기초연금이 5만원 올라 30만원이 됐다. 그런데 인상금 5만원은 곧바로 생계급여에서 깎였다.
지난해와 똑같이 51만원을 받는 홍씨는 요즘처럼 난방비가 많이 드는 계절에 손에 쥐는 건 10만원 남짓이다. 기초연금액을 아무리 높여도 홍씨 같은 생계급여 수급자는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홍씨는 “정부가 생계급여 수급자를 우롱하고 농락하며 버렸다”고 말했다.
이렇듯 기초연금 인상분만큼 생계급여가 깎이는 이른바 ‘줬다 뺏는 기초연금’을 해소하기 위한 예산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최대 30만원이 지급되는 기초연금을 전액 줄 수 없으니 근로소득의 30%를 공제하는 생계급여 소득산정 산식을 기초연금에 적용, 30만원의 30%인 약 10만원이라도 부가급여 형태로 주자는 것이었는데 내년도 예산에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는 기초연금이 도입된 2014년부터 예고됐다. 구법인 기초생활보장법과 신법인 기초연금법이 충돌해서다. 기초생활보장법은 다른 법적 지원이 있음에도 최저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때 지원한다는 ‘보충성의 원리’ 때문에 기초연금을 소득으로 잡지만 기초연금법은 기초생활수급자를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는다.
신법이 구법에 우선하다 보니 신법인 기초연금법에 따라 일단 기초연금을 주고 다음 달이 되면 구법인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기초연금만큼 생계급여를 깎는 것이다.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 이하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따라서 극빈층인 생계급여 수급자는 당연히 기초연금 대상자다. 그럼에도 생계급여 수급자의 10.8%는 생계급여가 깎이거나 아예 기초생활보장 대상에서 탈락할까 봐 기초연금을 포기한다. 이상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사무국장은 12일 “기초연금을 소득으로 잡는 건 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에 있기 때문에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바꿀 수 있는 데도 이 문제를 수년째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초연금만큼 깎으려면 생계급여라도 많이 줘야 하는데 현 정부 생계급여 인상률은 이전 정부만 못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열고 내년도 기준 중위소득을 2.94% 올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생계급여는 2018년 1.16%, 2019년 2.09%, 2020년 2.94% 등 3년 평균 2.06% 올랐다. 이는 박근혜정부 평균 인상률인 3.38%를 밑돈다. 소득이 전무한 1인 가구의 생계급여는 올해보다 고작 1만5000원 오른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기초연금만 받는 노인은 최대 30만원의 가처분소득이 추가로 생기지만 생계급여 수급자는 기초연금만큼 생계급여가 깎이기 때문에 가처분소득에 변화가 없어 극빈층과 그렇지 않은 노인의 소득이 더 벌어지는 것”이라며 “생계급여와 기초연금을 분리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재정부담 이전에 소득보장의 형평성이란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며 “노인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분들의 돈을 빼 상대적으로 돈 있는 분들에게 알파로 얹어주는 건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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