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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미래가 궁금하면 독일 이해해야… 베를린 지배의 비밀

[책과 길] 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지배하는가/폴 레버 지음, 이영래 옮김, 메디치, 396쪽, 1만8000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꼽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2005년부터 연임 중인 메르켈 총리는 여러 위기 속에서 독일이 유럽연합(EU)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가 되도록 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지배하는가’의 저자 폴 레버는 평가한다. 국민일보DB

세계경제를 이끄는 G2(Group of 2)는 미국과 중국이다. 그렇다면 G3는? 짐작대로 G2에 유로존을 더하면 된다. 유로존의 핵심 기구는 유럽연합(EU)이다. 그런데 2016년 영국이 국민투표로 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Brexit)’를 선언하면서 EU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영국 의회는 탈퇴 시행일(3월 29일)을 눈앞에 두고 브렉시트 연기를 결정한 상황이다.

그만큼 EU를 둘러싼 영국의 계산이 복잡하다는 얘기다. ‘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지배하는가’(원제 Berlin Rules)는 독일 중심의 EU 역학 관계를 생생하게 전하는 신간이다. 부제는 ‘브렉시트와 EU 권력의 재편성’이다. 2017년 초 출간된 이 책은 영국에서 ‘독일 알기’ 붐을 일으켰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현대 독일에 대한 통찰력 있는 가이드”라고 평했다.

저자 폴 레버는 영국에서 손꼽히는 유럽 전문가다. 옥스퍼드대 퀸스칼리지를 졸업한 그는 1972년 영국이 유럽경제공동체(EEC) 조약에 가입할 당시 외교관으로 활약했고, 1997년부터 6년간 독일 대사를 지냈다. EU 집행위원회 등 요직을 거치면서 40여년간 앙겔라 메르켈을 비롯한 독일 정치인들과 교분을 나눴다.

저자는 EU의 미래를 보려면 독일이 어떻게 EU를 이끌고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독일이 EU에서 지배적인 힘을 갖게 된 경위에서 시작해 힘의 바탕이 되고 있는 경제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제도, 향후 20년간 독일의 영향력을 예측한다. 이를 통해 EU의 과거를 보여주고 현재를 설명하면서 미래까지 전망한다.


EU에서 모든 정책 결정 과정은 28개 회원국의 타협을 필요로 한다. 독일이 EU를 지배한다는 말은 EU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독일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거나 관철된다는 뜻이다. 독일이 이런 힘을 가지게 된 계기는 2000년대 후반의 글로벌 금융 위기와 2010년대 초반의 유로 지역 재정 위기였다. 그리스의 파산, 우크라이나 사태, 시리아 난민 유입 등 유럽을 강타했던 위기에서 독일은 적극적으로 해법을 마련하고 실행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유럽의 수도는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이 아닌 베를린”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였다. 재정 위기가 한창이던 2012년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 장관이 독일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하기 위해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 장관의 휴가지로 찾아간 일이 이런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U 예산 분담금이 가장 많은 것도 독일의 발언권이 높은 데 큰 역할을 한다. 독일의 경제 규모는 유럽에서 가장 크다. 국내총생산(GDP)이 프랑스나 영국보다 25% 정도 높다. 독일 경제의 핵심은 제조업이다. 지멘스, 보쉬, 메르세데스 벤츠와 같은 많은 대규모 제조업체는 1세기 넘게 글로벌 브랜드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미텔슈탄트라고 불리는 중소기업들도 튼실하다.

독일은 EU의 기본 원칙인 안정과 성장 협약에 바탕을 둔 주장을 일관되게 펼친다. 안정·성장 협약은 유럽통화동맹 회원국들이 매년 재정 적자는 GDP의 3% 이내, 정부 부채는 GDP의 60% 이하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저자는 이에 대해 “모든 회원국이 독일 수준의 재정 통제력을 유지한다면 긴급 구제, 유로 본드가 무슨 필요가 있냐”고 꼬집기도 한다.

EU와 유로화의 구조와 규칙을 독일식으로 만드는 것도 독일의 정책이다. EU 설립 초기 20년 정도는 프랑스가 EU에서 지배적이었지만 이제는 독일이 중추다. 저자는 이런 독일의 위상이 앞으로 20년 동안 계속될 것으로 예측한다. 독일은 자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자국 경제가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힘을 행사하고 그 이상의 근원적인 비전이나 목적은 없다고 분석한다. 이 책은 유럽 전문가의 시각으로 독일이 주도하는 EU의 미래를 그리는 데 좋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에는 EU의 난민 포용 정책, 각종 경제 규제, 분담금 부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진단이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독일이 어떻게 EU를 지배하는가에 대해 상세히 알 수 있는 반면 왜 영국은 EU에서 독일에 밀렸는지 의문으로 남는다. 영국인인 저자가 영국의 관점에서 독일의 지배력을 설명하기 때문에 객관성을 잃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대목도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200여년간 유럽에서 영국의 외교 정책은 한 국가의 주도성을 인정하지 않고 더 큰 유럽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독일이 주도하는 EU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1946년 “지구상에서 가장 고상한 대륙인 유럽은 서구 세계의 뿌리다. 우리는 유럽 합중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유럽의 공동체성을 중요시했다. 브렉시트는 EU 주도권 경쟁에서 한참 밀린 영국이 자발적으로 택한 고립이라는 해석도 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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