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히스토리] 화장품 모델 변천사 짚어보니… 그대들 있음에 K뷰티 피어났다

김수현, 이종석, 여진구, 변요한, 박해진, EXO(백현 루한 디오 타오 첸 세훈 수호 크리스 시우민 카이 레이 찬열), 샤이니(온유 종현 Key 민호 태민), B1A4(산들 바로 진영 신우 공찬)….

햇살이 뜨거운 10일 오후 서울 명동, 해맑은 눈웃음을 담은 채 다소곳이 서 있는 꽃미남들의 등신대 모형이 발길을 멈추게 했다. 곳곳에 내걸린 대형 브로마이드 속에서 고운 피부를 자랑하고 있는 이들은 여성화장품 브랜드 모델들이다. 언제부터 남성들이 여성화장품 브랜드 대표 모델을 꿰찼을까? 여성화장품 모델 변천사를 통해 그 배경을 살펴본다.

◇1920년대부터 시작=국내 화장품 광고의 효시는 1922년 한 일간지에 소개된 박가분 광고다. 한복을 입은 여성을 일러스트로 그린 광고였다. 실물모델이 등장한 것은 1930년대다. 무용가 최승희가 1936년경 일본산 화장품 광고에 등장한 사진이 남아 있다. 국산 브랜드의 최초 실물 광고모델은 1956년 태평양화학공업사(현 아모레퍼시픽)가 내세운 영화배우 김보애다. ABC 크림을 알리기 위한 광고였다. 얼굴 사진 옆에 제품들을 나열한 모양이었다. 지금 보면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다. 아모레 퍼시픽 그룹 홍보팀 권성혜 과장은 11일 “모델이 들어간 이 광고는 제품명을 제시하고 특성을 나열하는 수준에 만족하고 있던 다른 회사들에 충격을 던진 것으로 사사(社史)에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색조캠페인으로 본격화=화장품 광고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색조화장품 캠페인 광고가 시작된 1970년대다. 색조화장품 광고는 신문광고의 컬러 시대 개막과 함께 시작됐다. 첫 컬러광고는 1970년 3월 5일자 일간지에 실린 아모레의 하이톤 메이크업 광고였다. 아모레는 1973년부터 국내 미스코리아대회에서 ‘미스 미(美)’를 ‘미스 아모레’로 뽑아 화장품 광고 모델로 내세웠다. 타사들은 영화배우 탤런트를 주로 기용했다. 70년대 화장품 광고를 주름잡았던 모델로는 한혜숙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 윤정희 주미 등이 있다. 모두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이들이다.

◇브랜드 전속 모델 등장=급속한 경제 성장이 이뤄졌던 1980년대 화장품 시장이 팽창하며 브랜드별로 전속 모델을 내세웠다. 특정 브랜드에는 특정 모델이라는 개념을 각인시키는 연상 작용을 통해 누적효과를 얻어내는 화장품 모델 마케팅이 시작됐다. 어떤 배우가 어떤 화장품의 모델이 되느냐가 시즌마다 화제가 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아모레는 1981년 금보라를 ‘화니핀’, 1984년 황신혜를 ‘나그랑’ 브랜드의 전속모델로 발탁했다. 한국화장품은 1981년 이혜숙을 ‘베라겐’, 1984년 김희애를 ‘쎄렉션’ 전속모델로 각각 기용했다.

◇해외모델 전성시대=1980년대 후반 외국인 광고모델 규제가 풀리면서 화장품 업계에도 외국 스타들이 등장했다. 드봉 화장품은 1989년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프랑스 배우 소피 마르소를 ‘드봉 아르드포’의 모델로 발탁했다. 피어리스도 독일모델 나타샤 킨스키를 고용하면서 해외모델 붐이 일었다. 소피 마르소 광고 이후 드봉 화장품은 업계 후순위에서 2위로 껑충 뛰어 올랐다. 외국 모델 기용효과를 톡톡히 본 LG생활건강은 이후에도 배우 섀넌 도허티, 미국 언론재벌 허스트 가문 출신의 패션모델인 ‘아만다 허스트’ 등을 모델로 썼다.

◇미모보다 개성 중시=국내 화장품 광고의 전성기로 꼽을 수 있는 1990년대는 다양한 모델들이 활동했다. 화장품 모델의 제1조건이 아름다움에서 개성으로 옮아간 시기였다. 탁구선수 현정화가 1993년 한국화장품 ‘템테이션’ 모델로 나섰다. 1999년 도도가 ‘빨간통 매니아’ 광고에 트렌스 젠더인 하리수를 모델로 등장시키면서 정점을 찍었다. 20대 모델들이 독차지했던 화장품 광고에 원숙미가 돋보이는 30대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다. 아모레 ‘아이오페’의 전인화, 한국화장품 ‘세르젬’의 양금석, 코리아나의 이미숙 등이 30대 모델로 원숙미를 뽐냈다. 여성의 성적인 미가 강조된 광고들이 등장해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로제화장품의 김혜수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신은경 김지호 등은 중성적인 아름다움으로 인기를 끌었다. 물론 젊고 청순한 여성들이 사라진 것은 절대 아니다. 90년대 화장품 모델의 최대 수확이라고 활 수 있는 이영애와 심은하가 있기 때문이다. 아모레 ‘마몽드’의 산소 같은 여자로 대중에게 각인된 이영애는 지금도 인기 화장품 모델이다.

◇한류가 필요충분 조건=최근 화장품 광고모델은 한류스타들이 점령하고 있다. 중국을 비롯해 홍콩 대만 등지로 제품을 수출하는 국내 브랜드들이 한류붐을 타기 위해 한류스타를 모델로 기용하고 있다.

서울 명동거리를 점령하고 있는 꽃미남 모델들도 바로 한류 스타들이다. 그들을 보고 바로 매장으로 들어가서 양손 가득 화장품을 들고 나오는 여성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여성화장품에 남성모델이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웰코스의 ‘과일나라’는 코팩의 모델로 배용준을 기용했다. 언론에서 소비자 눈길을 끌기 위한 ‘성(性) 파괴 광고’로 소개될 만큼 관심을 모았다. 웰코스 마케팅팀 정규선씨는 “당시 코팩은 획기적인 상품이어서 남성모델을 썼다”고 소개했다. 여성화장품의 남성모델 기용이 당시만 해도 충격요법이었던 셈이다. 코리아나가 2004년 ‘엔시아’를 론칭하면서 메인모델로 가수 비를 발탁했을 때도 남성 모델이란 이유만으로 눈길을 끌었다. 지금은 여성화장품의 남성모델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주 타깃인 여성 소비자들의 심리를 자극하고, 외모 가꾸기에 관심이 많아진 남성 소비자들의 관심까지 유도할 수 있는 성공적인 마케팅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류 붐이 일지 않았다면 여성화장품 광고에 남성모델이 주류로 자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네이처리퍼블릭은 2009년 창립 때부터 월드스타 비를 시작으로 JYJ, 장근석 EXO 등 남성 한류스타를 모델로 기용해왔다. 이 회사 마케팅본부 최임학 상무는 “남성 한류 스타의 기용으로 단기간에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 브랜드 친밀감을 높일 수 있었고, 수많은 여성 팬들을 잠재 고객으로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