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1970, 박정희 모더니즘] 모더니즘, 유신시대를 보는 새로운 시각

산업화 대 민주화 구도, “경제는 참 잘했는데 독재가 문제”라는 박정희 리더십 논쟁, 이 두 가지 도무지 화해할 수 없고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이분법 외에는 정녕 1970년대를 설명할 방법이 없단 말인가? 그 시대 대중들의 욕망과 역할은 정치, 경제, 리더십 중심의 이 구도 속에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는 것인가? 권보드래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 김성환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교수, 김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교수,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 황병주 역사문제연구소 상임 연구위원 등 5명이 이 지점에서 모였다. 다들 40대 중·후반으로 ‘486세대’라는 세대적 특성을 공유한 이들은 19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저자들이 찾아낸, 1970년대를 설명하기 위한 제3의 지대는 ‘모더니즘’이다. 근대가 시작된 이래 한국인들이 집요하게 욕망해 왔던 근대화와 문명화가 최초로 실현된 시기, 거기가 1970년대라는 발견이다.

“‘개발독재시기’로 불리는 박정희 통치기는 한국 사회를 자본주의적으로 본격 개편한 시기였다. 비록 그 시절 헤게모니를 다투던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자유주의로 일관되게 수렴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1960∼70년대를 통해 일어난 가장 뚜렷한 변화는 근대-자본주의 체계가 확고하게 뿌리내렸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는 사회 구조를 바꾸었을 뿐 아니라 주체의 습관과 내면까지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이다.”

‘1970, 박정희 모더니즘’은 1970년대를 모더니즘의 시기로 묘사하려는 시도로써, 또 그 시대의 두 주역이었던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아닌 그 아래 ‘유신의 아이들’에 의해 그 시대를 조명한 시도로써 주목할 만하다.

저자들은 유신시대를 새롭게 읽어내기 위해서 정치·경제 영역이 아니라 문화사와 생활사, 동아시아사 등에 주목한다. 또 박정희 개인이 아니라 그 시대 대중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통해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 도시화라는 모더니즘의 성취에서 본질적이었던 것은 리더십이 아니라 대중의 욕망이었고 대중의 힘이었음을 드러내 보인다.

책은 27개의 비교적 길지 않은 글들로 구성됐다. 저자들은 텔레비전, 영화, 기능올림픽, 경주 발굴, 새마을운동, 고교평준화, 의료보험, 문단권력, 청년문화, 대마초 파동, 선데이서울, 전위예술, 전태일, 김남주, 부마항쟁 등 여러 구석을 들여다본다. 각각의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리더십과 대중의 관계다. 유신의 리더십은 일방적으로 아래로 관철됐던 게 아니다. 유신의 대중은 때로는 동의하고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타협하며 리더십과 역동적으로 관계했다.

저자들은 “그 때가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는 아니었다”면서 “대중은 언제나처럼 근대화와 경제성장 그리고 복지에는 ‘동의’해주었는데, 박정희는 그런 정책과 몇 가지 성공에 대한 동의를 자신에 대한 지지로 오해하고 영구집권으로 횡령하려 했다”고 비판했다.

‘박정희 향수’가 흘러넘치는 2015년 한국에서 이 책은 “근대화가 박정희 리더십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이냐?”고 물으면서 그 시대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해방 이후부터 지금껏 성장해온 한국 민주주의와 대중의 힘을 생각하면 어쩌면 박정희나 그 독재 같은 것은 한낱 에피소드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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