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기업에 예속된 상아탑 그 현주소를 파헤친다

이것이 사실인가? 믿어지지 않는다. 대학에 대한 흉흉한 얘기야 간간이 들었지만 정말 이 정도란 말인가! 책을 덮고 저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기 나온 게 다 사실입니까? 지어낸 이야기는 없습니까?" '진격의 대학교'는 지금 한국의 대학을 보여준다. 20대에 대한 보고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개마고원·2013년)를 통해 주목받은 젊은 사회학자 오찬호(37)는 자신의 시간강사 경험, 학생들의 이야기와 글, 기사와 자료들을 동원해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 대학의 자화상'을 그려냈다. 그 얼굴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기괴하다.

대학에 들어온 학생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들어야 하는 강의로 ‘신입생 길잡이’가 있다. 취업정보센터 직원이 첫 강사로 나서 취업률 현황부터 보여주고, 한 학기 내내 금융권 취업정보, 대기업 입사 선배가 알려주는 학습법, 면접 시 이미지 메이킹 등의 수업이 이어진다. 이게 무려 ‘신입생 필수강의’다.

‘리더십’ 강의에서는 양복에 어울리는 나비넥타이 고르는 법을 가르치고, ‘진로탐색’ 강의에서는 스포츠면접 대비법도 배운다. 기업 합숙면접 시 반드시 테스트하는 피구나 족구, 단체줄넘기 등 운동 종목들을 미리 연습해두는 것이다. ‘글쓰기와 말하기’ 수업에서는 에세이가 아니라 자기소개서 쓰는 법을 배운다.

웃기고 화가 나고 슬퍼진다. 그야말로 ‘웃프다’. 저자는 이런 삽화들을 죽 이어붙이면서 현재의 대학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취업 중심’ ‘기업화’ ‘영어 강박’ ‘정치 배제’ 등을 추출해 낸다.

“단언컨대, 경영학은 줄곧 학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공이다… 2014년 기준 전국에 일반 4년제 대학은 189개다. 이들 학교에 경영학 계열의 학과가 무려 686개 있다. 학교당 3, 4개의 경영학 관련 전공이 개설되어 있다는 뜻이다… 참고로 2014년 기준으로 국문학(165개), 철학·윤리학(71개), 사회학(45개), 정치외교학(82개), 심리학(60개) 계열을 합하면 423개다.”

현재 대학에서는 ‘비(非)상경계열’이란 구분이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다. ‘비상경계열’이란 단어는 대학의 메인이 상경계열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럼 인문학과는 어떤가?

“철학과 학생들은 ‘굳이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뭐냐?’라는 조롱에 늘 노출된다… 지루한 학문 정도였던 것이 쓸데없는 학문이 되면서 철학을 전공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멸감’을 느낄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 전반, 나아가 사회학, 정치학까지 이 구조에 포섭된 상태다.”

폐과의 위기 속에서 인문계열은 먹고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겠다는 ‘걸인의 철학’으로 무장한다.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현 KT 회장)을 교수로 초빙하려 한 에피소드는 비인기 학과들이 생존을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사례다.

‘취업 중심’의 대학 문화와 ‘기업화’하는 대학의 문제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영어로 강의하고, ‘두산그룹의 브랜드 이미지를 고취시키기 위한 창의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제안서를 작성하라’는 조별 실습과제를 교양과목에서 출제하는 코미디를 연출하기도 하지만, 기업의 논리를 대학과 대학생들이 내면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요즘 대학은 이력서에 쓸 수 있는 동아리와 그렇지 않은 동아리를 구분한다. 이는 기업이 좋아할 만한 것을 선호하는 수준을 넘어, 싫어할 만한 것을 철저히 경계하는 자기검열로 이어진다. 빈곤, 성차별, 언론의 공정성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아리 경험은 ‘주홍 글씨’가 될 수도 있다.”

“대학의 토론장에 ‘삼성이 있으니 우리가 이 정도라도 사는 거다!’ ‘삼성 망하면 우리도 망한다!’ 식의 주장들이 난무한다.”

대학교육 현장에서 정치색을 용인할 수 없다는 분위기도 강화되고 있다. 대학당국만 그런 게 아니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 아찔할 정도다.

“나는 ‘박근혜씨가 아버지의 정치 스타일을 고수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스치듯 한마디 했을 뿐이다. 강의평가에는 ‘대통령 후보에게 박근혜씨라고 하는 게 굉장히 거슬렸다’는 말이 꽤 많았다.”

성균관대에서는 총장과 재단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강사에게 강의 배정이 취소되었다. 경희대에서는 ‘자본주의 바로 알기’라는 강의를 듣는 학생이 반자본주의, 반미사상이라며 강사를 국정원에 신고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언급된 사례들은 다소 충격적이고 과도한 에피소드들이고, 한국 대학의 ‘일부’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그 ‘일부’는 “최근에 자꾸만 증가하는 추세의 ‘일부’”다.

이 책은 고발에 충실할 뿐 반전을 모색하진 않는다. “대학은 시장의 편협한 명령에 항복하도록 내버려두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공적 기관이다”라는 제니퍼 워시번(‘대학 주식회사’ 저자)의 말을 거듭 강조할 뿐이다. 이번 주 출간된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 있음’(컬처그라퍼)을 함께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인생의 가치는 유용함에 있지 않으며, 쓸모없음이 우리를 구원한다”면서 인문학과 대학의 가치를 열렬하게 옹호하는 이탈리아 인문학자의 목소리가 체념에 빠져드는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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