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간 필리핀 세부에서 사역해온 황영희(63) 선교사가 규모 6.9의 강진이 덮친 세부의 긴박했던 순간과 현지 상황을 전해왔다. 황 선교사는 2일 국민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참혹한 재난 앞에서 계속되는 여진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며 6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세부의 현지 주민들을 위한 한국 교회의 기도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황 선교사는 지난달 30일 밤 9시59분(현지시간), 진앙인 세부 북부 보고시 해상과 약 94㎞ 떨어진 막탄섬에서 공포의 진동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는 “사역지인 파그라움센터 2층 건물이 3분 정도 많이 흔들렸다”며 “튼튼한 건물인데도 2013년 지진 때보다 훨씬 무서웠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지진이 사그라들자마자 황 선교사와 현지인들은 즉시 건물 밖 공터로 뛰쳐나갔다. 그는 “지진이 끝나고 밖에서 한참을 기다리면서, 여진이 두려워 1층짜리 건물에서 자야 하나 하는 이야기까지 나눴다”며 “바깥은 어둡고 또 폭우가 내리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이번 지진은 많은 주민에게 2013년 222명의 목숨을 앗아간 보홀 대지진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현지 주민 마르기씨는 “12년 전 겪었던 지진의 데자뷔였다”며 “아픈 어머니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공황상태에 빠지지 않으려 애썼다”고 증언했다. 루디씨는 “너무 심하게 흔들려 공황에 빠졌고, 밤새 과도한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마리엘씨는 “학창 시절 지진 대피 훈련을 받았지만, 막상 닥치니 무엇을 해야 할지 잊고 안전한 곳으로 뛰쳐나가기만 했다”고 고백했다.
주민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본진의 충격만큼이나 끝없이 이어지는 여진의 공포다. 필리핀 화산지진연구소는 지난 1일까지 700회가 넘는 여진이 감지됐고, 앞으로 며칠간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지진 이튿날인 지난 1일 오후 3시39분에도 규모 4.7의 강한 여진이 발생해 주민들을 또다시 공포에 떨게 했다. 황 선교사는 “모두가 지진이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극도로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날이 밝으며 드러난 세부 북부 지역의 피해는 처참했다. 오래된 석조 교회는 힘없이 무너져 내렸고, 맥도날드 건물도 뼈대만 남았다. 도로 곳곳은 엿가락처럼 휘고 갈라져 외부로부터의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다. 병원 마당에는 갑작스러운 재난에 희생된 이들의 주검이 검은 비닐에 덮인 채 줄지어 있었다.
밀알복지재단 세부지부장으로 16년간 현지 빈민가에서 ‘파그라움 센터’를 운영하며 장애 아동과 저소득 청소년들을 섬겨온 황 선교사는 “우선 두려움에 떠는 주민들을 위로하고 피해 상황을 확인한 뒤, 재단 차원에서 구호 활동을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더는 심한 여진 없이 이 시간이 무사히 지나가도록, 그리고 이번 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고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게 될 북세부 주민들을 위해 한국교회가 함께 기도해달라”고 중보기도를 요청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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