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경기 군포 LS전선 연구·개발(R&D)센터에서 만난 이인호 기술개발본부장(CTO)은 지난 2007년 ‘해저케이블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시장 진출을 주도했던 주역이다. 이 본부장은 “구자열 당시 LS전선 사장의 지시 아래 진행한 일”이라며 “구 당시 사장은 LS전선이 세계 1등이 되려면 해저케이블 사업을 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 판단이 맞았다”고 말했다.
해저케이블은 땅 위를 지나는 지중케이블, 송전탑 사이 매달린 가공선보다 기술·설비의 진입 장벽이 훨씬 높다. 해저케이블은 길이부터가 지중케이블·가공선의 수백배에 달해 요구되는 생산 역량의 차원이 다르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LS전선은 2009년 강원도 동해공장에서 국내 최초로 해저케이블 상용 생산을 시작한 이후 글로벌 시장을 과점하는 4개 업체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 본부장은 “시장 진출 초기에 기존 메이저 전선 업체들의 견제가 심했다”며 “이들 기업은 주요 고객사인 해상풍력 개발사들에 LS전선의 기술력과 신뢰도를 폄훼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니 기술을 자체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며 “과거 지중케이블·가공선 분야에서 쌓은 업력이 귀중한 기초 체력이 됐다”고 말했다.
후발주자였던 LS전선은 업계 기술 리더로 성장했다. 이 본부장은 “지난 2019년 국제에너지기구(IEA)가 공인한 LS전선의 초전도 케이블을 이용한 송전에 성공하면서 한국은 세계 최초 초전도 상용화 국가로 등재됐다”고 말했다. 초전도는 특정 온도 이하에서 전기 저항이 없어지는 현상으로, 초전도 케이블은 저손실·대용량 전력 수송이 가능하고 전자파 발생이 미미하다.
이 본부장은 LS전선의 기술 고도화를 이어갈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R&D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본부장은 “직접 대학교에 특강을 나가 이공계 학생들에게 최신 기술 동향을 가르치는 동시에 회사를 알리고 있다”며 “지난해부터 LS그룹이 시작한 대중매체 광고도 인력 확보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했다.
이 본부장은 향후 15~30년 동안 지속될 전력기기 호황 사이클 이후까지 바라본다. 장기적으로 LS전선을 먹여 살릴 유망 분야로 전기화, 전기차, 수소, 초전도, 자원 재활용 등 5가지를 찍었다. 앞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시장인 동시에 LS전선의 기존 사업과도 관련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이런 기술을 LS전선 자체 R&D 역량만으로 확보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오픈 R&D’로 외부 전문가들과 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5회 기술공모를 진행 중인 LS전선은 해저케이블 시공 자회사 LS마린솔루션이 활용할 만한 ‘로봇 이용 모니터링 기술’ 제안을 기대하고 있다.
최근 중국 딥시크의 등장으로 데이터센터발(發) 전력기기 수요 전망에 먹구름이 꼈다는 시각이 제기됐고, 전력기기 기업들의 주가가 내려가기도 했다. 저렴한 하드웨어로도 높은 성능을 낼 수 있으면 AI 인프라 투자가 기존 예상을 밑돌 수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이 본부장은 “싼 반도체, 낮은 전력 소모량으로도 AI 구동이 가능하다면 오히려 관련 인프라 투자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는 셈”이라며 “개별 데이터센터 규모는 작아지더라도 개수가 많아지면서 LS전선이 준비 중인 데이터센터 맞춤형 전력기기 시장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입사 40년 차인 이 본부장은 LS전선 구미·동해 공장장, 동해생산부문장, 해양사업본부장(전무) 등을 거쳤다.
군포=황민혁 기자 ok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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