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만 보이네…” 찬바람 부는 ESG 채권 시장, 국민연금 탓?

연합뉴스

기업이 환경·사회·지배구조 문제를 개선하는 데 쓸 자금을 조달하려고 발행하는 ‘ESG 채권’이 외면받고 있다. 채권 시장의 ‘큰손’ 국민연금이 관심을 줄이면서 민간 기업과 금융사가 시장에 발길을 끊은 탓이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기업이 발행한 ESG 채권(주택금융공사 주택저당증권(MBS) 제외)은 42조500억원어치로 전년(42조2750억원) 대비 2250억원 적다. ESG 채권은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에 돈을 빌려주려는 금융사(IBK기업은행 등)나 서민을 위한 저렴한 주택을 짓기 위한 공기업(주택금융공사 등), 신재생 에너지 관련 설비를 지으려는 민간 기업(LG에너지솔루션 등)이 발행한다.

한국 기업의 ESG 채권 발행 실적은 2021년(52조3040억원) 정점에 도달한 뒤 2년째 감소 추세다. 2021년 대비 사회적채권(27조3960억→31조3380억원)은 발행이 증가했지만 녹색채권(12조4590억→7조4050억원)은 거의 반토막이 났다. 지속가능채권은 12조4490억원에서 3조3070억원으로 4분의 3가량 급감했다.

일반 기업과 금융사가 발행사 명단에서 대거 빠진 결과다. 지난해 기준 ESG 채권을 발행한 공기업은 27곳, 유동화 특수목적법인(SPC)은 29곳으로 2021년(24·25곳)보다 늘었지만 민간 기업은 52곳에서 10곳으로, 금융사는 53곳에서 24곳으로 대폭 감소했다. 발행액 상위 10개사 명단을 보면 IBK기업은행(7조원), 주금공(6조6900억원), 중소기업진흥공단(4조4700억원), 신보2023유동화(4조3060억원), 캠코(1조9750억원), 한국장학재단(1조6000억원), 예금보험공사·우리카드(각 1조1700억원), LG에너지솔루션(1조원), 포스코퓨처엠(9500억원) 순이다. 상위 7곳이 공기업이나 유동화 SPC다. 2021년까지 ESG 채권을 발행했던 154개사 중 절반이 넘는 88개사가 이듬해부터는 시장에 발길을 끊었다.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국민연금의 태도 변화가 우선 꼽힌다. 국민연금은 2020년 “투자 자산의 절반 이상을 ESG 채권으로 채우겠다”고 발표했다. 이듬해 ESG 채권 발행액이 전년(8조9700억원) 대비 43조3340억원 훌쩍 증가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2022년 정권이 바뀐 뒤 국민연금 이사장까지 바뀌면서 “ESG 채권 투자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겠다는 입장을 철회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시장에 퍼졌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ESG 투자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하는 작업조차도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고금리와 불확실성도 악영향을 미쳤다. 2021년 하반기부터 한국은행을 포함해 주요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끌어올리며 긴축에 나서자 시장 금리가 치솟았다. 여기에 2022년 하반기에는 레고랜드 사태까지 터지며 채권 시장이 급격히 경색됐다. 채권 투자 심리가 얼어붙자 민간 기업과 금융사의 ESG 채권 발행 여력이 줄었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정삼 한국신용평가 재무평가본부 팀장은 “민간 기업과 금융사의 ESG 채권 발행이 감소한다는 것은 사회 문제 해결 노력 의지가 약해진 것이나 다름없어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면서 “정부와 금융 당국의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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