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고교생 ‘자전거 도둑’… 14평 집 7남매 맏이였다

“자전거 훔쳤다”며 자수한 고교생
6남1녀 맏아들… “동생 밥 챙겨주려”
벌금 10만원 선고유예 판결

입력 : 2024-02-25 14:06/수정 : 2024-02-25 14:36
국민일보 DB

‘자전거를 훔쳤다’며 지구대에 자수한 고등학생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14평 임대아파트에서 동생 6명을 돌보는 이 학생은 “동생들 밥을 챙겨주기 위해 서두르려다 다른 사람의 자전거를 타게 됐다”고 말했다.

25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20일 경기도 오산의 오산경찰서 한 지구대에 고등학생 A군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들어와 자전거를 절도했다고 자수했다.

A군은 같은 달 18일 오후 9시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도보 30분 거리 집으로 퇴근하던 길에 한 아파트 단지 자전거 보관대에 잠금장치 없이 세워져 있던 자전거를 타고 귀가했다.

몇 시간 뒤 자전거 주인이 “누군가 내 자전거를 훔쳐갔다”고 112에 신고했고,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A군은 지구대에서 “평소 친구가 타던 자전거와 비슷하게 생겨 친구의 자전거로 착각했다”며 “잠시 빌려 타려고 한 것인데, 뒤늦게 다른 사람의 자전거라는 사실을 알고 돌려줬다”고 진술했다.

그는 “일을 끝내고 귀가하다가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아 빨리 여섯 동생의 밥을 챙겨줘야 한다는 생각에 서두르느라”고 말하며 말끝을 흐렸다고 한다.

경찰 조사 결과 A군은 14평짜리 국민임대아파트에 거주 중인 6남1녀 가정의 장남이었다. 아직 고등학생이었지만 가족 생계를 위해 집 근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A군 부친은 물류센터에서 근무하고, 모친은 심부전과 폐 질환을 앓고 있어 여섯 동생을 돌보는 것은 사실상 A군의 몫이었다고 한다. 그의 막냇동생은 생후 7개월 된 갓난아기였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었지만 기초생활수급이나 차상위 등 취약계층 선정 대상에서는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일정 기준 이상의 차량을 보유했다는 이유였다. A군 부친은 “다자녀인 데다가 아내를 병원에 데려가는 일이 많아 차량이 꼭 필요해서 보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연을 전해들은 경찰은 A군 가족이 복지 사각지대에 있다고 판단해 주민센터와 보건소 등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그의 보호자를 면담하고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살폈다.

이후 오산시와 오산경찰서, 주민센터 등 7개 기관은 지난 6일 통합 회의를 열고 A군 가정에 대한 복지 지원을 결정했다. 긴급복지지원(월 320만원씩 3개월)과 가정후원물품(이불, 라면 등), 급식비(30만원) 등이 지원됐다.

A군의 절도 혐의에 대해서는 최근 법원이 벌금 1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는 죄질이 가벼운 범죄에 대해 형을 선고하는 것을 일정 기간 미루는 조치다. 유예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사실상 없던 일이 된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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