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손흥민(토트넘)이 아시안컵에서 호주를 꺾고 비로소 웃었다. 2015 호주 아시안컵 당시 호주와 결승전에서 흘렸던 눈물을 말끔히 씻어낸 것이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3일(한국시간) 카타르 알와크라의 알자눕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8강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호주를 2대 1로 꺾고 4강에 진출했다.
정규시간 90분까지는 9년 전 맞대결과 비슷하게 흘러갔다. 당시 결승전에서 한국은 전반 45분 실점해 끌려가다가 후반 46분 손흥민의 극적인 동점골로 승부를 연장으로 넘겼다.
이날 8강전에서도 한국은 전반 막판에 실점했다. 손흥민이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점도 같았다. 후반 49분 손흥민이 골대 왼쪽으로 돌파하다가 루이스 밀러로부터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키커로 나선 황희찬(울버햄프턴)이 깔끔하게 성공시키면서 승부는 원점이 됐다.
연장전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9년 전 한국은 연장 전반에 결승골을 내줬던 반면, 이날 결승골은 한국이 차지했다. 승리를 결정지은 골의 주인공은 손흥민이었다. 연장 전반 14분 황희찬이 얻어낸 프리킥을 오른발 감아차기 직접 슈팅으로 마무리했다.
9년 전 종료 휘슬이 울리자 분한 나머지 엉엉 울었던 ‘막내’ 손흥민은 이날 든든한 ‘캡틴’의 모습으로 당당히 그라운드를 돌며 팬들에게 인사했다.
경기 최우수선수(MOM) 자격으로 기자회견에 참석한 손흥민은 이날 승리가 9년 전 패배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말에 “복수라기보다는 축구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2015년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 경기들, 경험들 덕에 축구선수, 사람으로서 (제가) 여기까지 성장했다”면서 “오늘, 꼭 그것(복수) 때문이 아니라, 팀의 목표만 생각하며 경기에 임했다”고 말했다.
손흥민을 비롯한 태극전사들은 ‘불굴의 정신력’으로 대회에 임하고 있다. 조별리그 2차전 요르단과 경기부터 이날 8강전까지 4경기 연속 후반 추가시간에 득점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전과 이날 8강전에서는 후반 추가시간 동점골로 승부를 연장까지 끌고 갔고, 결국 다음 단계로 올라섰다.
질 것 같은데 절대 지지 않고 승부를 뒤집어버리는 대표팀에 대해 ‘좀비 축구’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손흥민은 “팀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거듭된 극적인 승부가) 선수들의 정신력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런 경기로 인해 믿음이 더 강해진다”면서 “연장전 가면 대부분이 지치는데 우리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로 뭉쳐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했다.
두 경기 연속 120분 경기를 뛴 데 데해서는 “축구선수를 하면서 연장전을 두 경기 연속 뛴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면서 “정신력으로 이겨내야 하는 것도 경기의 일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라를 위해 뛰는데 힘들다는 건 핑계일 뿐”이라며 “이제 4개 팀만 남아 하나의 우승컵을 놓고 싸우게 된다. 어떤 핑계도 필요 없다. 한 가지 목표만 가지고 달려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흥민은 기자들의 질문이 끝나자 자청해서 한마디를 더 했다. 그는 “늘 경기를 뛰는 선수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면서 “오늘만큼은 함께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벤치에서 있던 선수들, 그라운드에 들어가지 못한 선수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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