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전투기가 흑해 상공 국제공역에서 비무장 상태로 운항 중이던 미 공군 무인 정찰기(드론)에 물리적 충돌을 일으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미군과 러시아군이 실제 충돌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은 즉각 러시아 대사를 초치하고 강력히 항의했다.
미군 유럽사령부는 14일(현지시간) 러시아 공군의 옛 주력기인 SU-27기 2대가 흑해 상공 국제공역에서 운항 중이던 미 공군의 정찰 무인기 MQ-9와 충돌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SU-27기가 의도적으로 MQ-9 앞에서 연료를 뿌리고, 그 앞을 난폭하고 부적절하며 비전문적인 방식으로 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SU-27기 1대가 MQ-9와 부딪혀 후면에 장착된 프로펠러가 손상됐다. MQ-9을 조종하던 미 공군 요원들은 이후 드론을 국제 해역으로 추락시켰다. 미 국방부는 러시아 전투기가 30~40분간 난폭 비행을 했다고 설명했다.
제임스 헤커 미 공군 사령관은 “우리 MQ-9는 국제공역에서 일상적인 작전을 수행하던 중 러시아 항공기에 부딪혀 추락해 완전히 손실됐다”며 “러시아 측의 안전을 도외시한 비전문적 행위로, 두 항공기가 모두 추락할 뻔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동맹국 항공기는 국제공역에서 운항을 계속할 것이며, 러시아 측에 전문적이고 안전하게 행동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미 고위 관리는 “흑해 상공을 비롯한 국제공역에서 러시아 조종사들의 위험한 행동 패턴 중 하나”라며 “이 같은 공격적 행동은 계산 착오나 의도하지 않은 긴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패트릭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군 드론은 확실히 국제공역에서 비행했다”고 말했다. 군 고위 관계자는 “MQ-9은 크림 반도 남서쪽 120㎞ 지점에서 비무장 상태로 정찰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전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으로부터 사건을 보고 받았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며 우리는 이에 대한 반대 의사를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무부는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를 초치해 드론 격추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린 트레이시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도 러시아 외무부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존 커비 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최근 몇 주 동안 러시아 항공기에 의한 유사한 ‘차단’(intercepts)이 있었다. 드문 일은 아니다”면서도 미국 드론 중 하나가 실제 충돌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그들(러시아)이 흑해 상공의 국제 영공에서 우리가 비행하고 작전하는 것을 저지하거나 단념시키려는 메시지라면 이는 실패할 것”이라며 “우리는 세계와 그 지역에서 우리 국가 안보를 위해 해야 할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자국 상공 인근에서 비행하는 상대국 군용기를 차단하는 행위는 과거에도 종종 발생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물리적 충돌로 이어져 미군기가 추락한 것은 냉전 이후 처음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텔레그램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러시아 전투기는 탑재된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무인 항공기와 접촉하지 않았으며, 안전하게 본국 비행장으로 돌아갔다”고 부인했다. 러시아는 자국 국경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드론을 식별하기 위해 전투기를 출격시켰고, MQ-9은 조종력을 상실한 채 강하하다가 수면과 충돌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라이더 대변인은 “이 사건은 비디오로 촬영됐고, 국방부가 기밀을 해제하는 데 필요한 절차를 밟고 있다”며 “영상이 공개되면 국방부의 사건 설명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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