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 구의원 선거가 친중 진영의 궤멸적인 패배로 결론나자 홍콩에서는 “불만의 쓰나미가 홍콩을 쓸어버렸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홍콩 시위대 진압을 측면 지원해오던 중국 본토는 선거 결과를 애써 무시하면서도 사실상 패닉 상태에 빠진 분위기다. 송환법 반대 시위가 시작된 지난 6월이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온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은 다시 최대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됐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25일 홍콩 선거결과에 대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홍콩은 중국의 일부이며 중국의 특별행정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그는 이어 “홍콩을 엉망으로 만들거나 홍콩의 번영과 안정을 해치려는 어떤 시도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매체들은 선거 상황에 대한 입장 정리가 안된 듯 오전 한때 침묵을 지키다 뒤늦게 옹색한 평가를 내놨다.
관영 환구시보는 사평에서 송환법 ‘풍파’로 범민주 진영이 단기적으로 동원력에 힘을 얻었을 뿐이라고 깎아내렸다. 신문은 “대다수 홍콩인은 이미 폭력에 신물이 났으며 질서를 되찾기를 바란다”고 강조하며 서방 배후설을 거론하기도 했다.
반면 홍콩에서는 이번 선거를 친중파를 궤멸시킨 ‘선거 혁명’으로 평가하며 향후 중국 정부의 정책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6개월의 거리 시위에서 비롯된 반정부 물결이 홍콩 전역의 투표소를 휩쓸었다”며 “친중 진영은 기록적인 투표 속에서 압도적인 패배에 충격에 빠졌다”고 평가했다.
이번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은 홍콩의 도심과 교외, 부유층 또는 서민 거주 지역을 가리지 않고 승리를 거뒀다. 따라서 유권자들이 대부분 범 민주 진영 후보를 지지했지만 이는 역으로 친중 진영 후보들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지미샴 민간인권전선 대표가 당선되는 등 젊은 후보들이 대약진한 것은 민심이 홍콩 정부 보다는 자유를 위해 싸우는 시위대를 더 두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홍콩 시위에 대한 강경진압을 주도해온 캐리 람 행정장관은 더욱 코너에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벌써 친중 진영에서는 캐리 람 체제를 이대로 끌고가면 내년 입법회(국회의원) 의원 선거 등 향후 정국에서도 참패가 불가피하다며 ‘교체론’이 나오고 있다.
빈과일보는 홍콩 친중 정치인들 사이에서 “이번 선거는 인재”라며 람 장관을 탓하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선거 패배로 이어진 홍콩 시민들의 분노가 거듭된 정책실패와 무능을 드러낸 람 장관 탓이라는 비난이 거세다는 얘기다.
람 장관은 당초 지난 6월 송환법 반대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책임론에 시달려왔고 최근에는 조기 경질설까지 나오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시진핑 국가주석은 이달 초 상하이에서 람 장관을 만나 지지를 표명하고 홍콩 시위대에 대한 강경 대응을 주문하며 경질설을 잠재웠다.
하지만 이번 구의원 선거에서 홍콩 시민들의 민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친중 진영에서도 그를 부담스러워하는 만큼 람 장관을 더 이상 끌어안기는 힘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또 람 장관을 경질함으로써 홍콩 사태를 일단락 짓는 ‘꼬리자르기’ 효과도 예상해볼 수 있다.
레이 옙 홍콩도시대학 교수는 “중국이 캐리 람을 계속 행정장관으로 둘지 이제는 결정을 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홍콩 사태에 직접 발을 담근 시 주석도 위상에 흠집을 남겼다. 시 주석은 상하이에서 람장관은 만나 “폭력과 혼란을 제압하고 질서를 회복하는 건 홍콩의 당면한 중요한 임무”라고 강경 대응을 지시했다. 시 주석은 해외 순방 중에도 폭력 행위의 종식을 강력히 주문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홍콩 시민들이 반중 정서를 강하게 드러내면서 시 주석은 체면을 구기게 됐다.
특히 홍콩 내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를 앞세워 홍콩, 마카오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대만 통일까지 염두에 뒀던 시진핑 주석의 구상도 흔들리게 됐다. 이는 중국몽을 내세운 시주석에게 뼈아픈 대목이다.
결국 홍콩 시위에 대한 강경 대응이 홍콩 내 친중파를 약화시키고, 대만에도 반중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해 시 주석의 권위도 손상이 불가피해졌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향후 홍콩 사태에 대한 접근법을 재고해야 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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