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수도 산티아고가 지하철 요금 인상에 항의하는 격렬한 시위로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칠레 정부는 19일(현지시간) 15일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 당국에 치안 책임을 부여했다. 하지만 21일에도 시위와 총파업이 예고된 상황이어서 칠레 상황이 안정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번 시위는 지난 6일부터 적용된 지하철 요금 인상에서 촉발됐다. 칠레 정부는 유가 상승과 페소화 가치 하락 등을 이유로 지하철 요금을 인상했다. 칠레 지하철 요금은 시간대에 따라 다른데 이번 인상으로 피크 타임 기준 요금은 800칠레페소(약 1328원)에서 830칠레페소(약 1378원)로 올랐다. 인상 비율로만 보면 크지 않지만 그동안 잦은 인상이 시민을 자극했다. 칠레 언론에 따르면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은 지난 12년간 두 배 이상 올랐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 해외 언론은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이 이끄는 보수 정권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쌓였던 저소득층의 불만이 시위의 근간에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들 주도로 7일 시작된 시위는 점차 격렬해져 18일에는 지하철역 방화, 건물 파손, 상점 약탈 등으로 번졌다. 17일 저녁 피녜라 대통령이 고급 이탈리아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이 인터넷에 공개된데 이어 18일 오전 글로리아 후트 교통부 장과닝 임금 인상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 시위대를 자극했다. 격렬한 시위로 이탈리아계 전기회사인 에넬 건물에 큰 화재가 발생하고 시내버스가 불에 타 뼈대만 남기도 했다.
경찰도 최루탄과 물대포로 시위대를 진압하면서 산티아고 도심에서 12시간가량 격렬한 대치가 이어졌다. 시위대가 지하철역을 공격하면서 지하철역 136곳이 모두 폐쇄됐다. 칠레는 남미에서 경제와 치안이 가장 안정된 나라로 꼽혀 왔지만 시위가 격렬해지자 피녜라 대통령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정부는 시민의 이동이나 집회 자유를 제한할 수 있게 된다. 비상사태 첫날인 19일 오전 산티아고 도심 곳곳에는 1973~90년 군부독재 시절 이후 처음으로 군인들이 배치됐다.
시위사태 책임자로 지정된 군 장성 하비에르 이투리아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41개 지하철역이 시위로 파손됐으며, 총 308명이 연행됐다”면서 “군 투입 이전 시위 진압과정에서 경찰 56명이 부상하고 경찰차량 49대가 파손됐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산티아고가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가능한 집에 머무를 것을 권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비상사태 선포 이후에도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시위대는 불붙인 타이어와 나무 등으로 산티아고 주요 도로를 봉쇄하고 군·경찰과 대치중이다. 이에 칠레 정부는 지하철 요금 인상을 취소하기로 하고 야간 통행금지령까지 발령했다. 피녜라 대통령은 TV로 생중계된 연설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겸허히 들었다”며 “지하철 요금 인상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위대가 지하철 요금 인상 철회를 받아들여 시위를 중단할지는 미지수다. 시위대가 오는 21일 총파업과 시위를 예고한 가운데 산티아고 시민들의 여론은 엇갈린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칠레에 앞서 이웃나라 에콰도르에서도 정부의 유류 보조금 폐지로 반정부 시위가 11일간 지속됐다. 레닌 모레노 대통령 등 정부가 한때 수도를 비우고 피난까지 떠날 정도로 격해졌던 시위는 정부가 ‘폐지 철회’로 백기를 들면서 끝났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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