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정부의 잇따른 경제 보복 조치에 국내 반일 운동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일반 시민 뿐 아니라 여러 지방자치단체도 자매도시와 교류를 끊는 등 반일 운동에 나서고 있다. 현 상황을 ‘기해왜란(己亥倭亂)’으로 규정하고 일본에 맞서겠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부 시민은 ‘신 독립군’을 자처하며 분노를 표출한다.
시민들의 분노는 일본 정부가 지난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 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며 격화됐다. 일본 여행 자체와 일본 상품 불매운동처럼 경제 분야에 한정되던 반일 운동은 이제 사회·문화 영역으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4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 관련 뉴스를 보고 있던 용접공 임석원(54)씨는 “반일 운동으로 일본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일방적인 경제 제재에 가만히 있으면 한국인들을 바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원 박현수(51)씨는 “싸움을 시작했으니 이겨야 한다”며 “한국 경제를 살리면서 일본에 경제적으로 타격을 줄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러 지방자치단체도 행동에 나서고 있다. 서울 강남구는 2일 강남 주요 거리에 걸어놨던 만국기 중 일장기 14장을 걷어냈다. 경기도 안양시는 ‘경제독립운동’을 실천하겠다며 일본 자매·우호 도시와의 교류를 끊겠다고 밝혔다. 경남 김해시 소상공인연합회 등 20여개 시민단체는 지난 1일 “경제왜란, 기해왜란을 일으킨 아베 정권의 치졸한 행위를 강력히 비판한다”며 일본과 관련됐다면 안 팔고, 안 사고, 안 가고, 안 타고, 안 입는 ‘5NO 운동’을 제안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2020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하자’는 내용의 청원이 10여건 게재됐다.
시민 1만5000여명은 지난 3일 서울 광화문광장과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규탄하는 3차 촛불 문화제를 열었다. 일본 정부 규탄 집회는 오는 10일에도 열리고 광복절인 15일에는 훨씬 더 큰 규모로 개최될 예정이다. 3일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은 ‘독립운동은 못 했지만 불매운동은 해야 한다’ ‘아베 정권 규탄한다, 강제 징용 사죄하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친일파를 청산하자” “국민의 힘으로 새 역사를 쓰자” 구호를 외쳤다.
집회를 준비한 민주노총과 정의기억연대 등 682개 단체가 모인 ‘역사왜곡·경제침략·평화위협 아베 규탄 시민행동’은 “100년 전 가해자였던 일본이 한국을 대상으로 다시 경제침략을 저지르고 있다”며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한국 정부를 향해서는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은 즉각 파기되어야 한다”며 “일본이 화해치유재단에 출연한 10억엔을 반환해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를 확정하라”고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강렬한 분노의 바탕에 과거사에서 비롯된 정서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일제 치하에서 독립을 제 손으로 이루지 못했던 과거의 기억이 반일 감정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 교수는 “‘기해왜란’과 ‘신 독립군’ 같은 단어는 시민들이 일본의 경제 제재를 국가 간 전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반일 운동은 광복절 이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방극렬 황윤태 기자 extre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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