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태(50)는 동래고와 경성대를 졸업한 1991년 롯데 자이언츠에 1차 지명됐다. 2004년까지 뛰며 1990년대 최고의 2루수로 꼽혔다. 롯데 원클럽맨으로 영원한 주장으로 통한다. 특유의 흔들 타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악바리 근성을 보여줬다.
1991년 개막전 1번 타자로 나와 첫 안타를 바로 뽑아냈다. 그해 132안타, 14홈런, 74타점, 69득점, 타율 0.285를 기록했다. 2루타 29개는 리그 전체 1위였다. 신인 첫해부터 주전 2루수로 활약했던 신인이었다. 그해 신인왕은 쌍방울 레이더스 조규제에게 돌아갔지만 2루수 골든글러브는 박정태의 몫이었다.
1992년에는 타율 0.335를 기록하며 전체 2위에 랭크됐다. 2루타는 무려 43개를 때려내며 2년 연속 1위에 올랐다. 1992년 롯데의 두 번째이자 아직까지 마지막으로 기록되고 있는 한국시리즈 우승에 큰 몫을 했다. 그가 한국시리즈 우승 뒤 펄쩍펄쩍 뛰던 모습은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2년 연속 2루수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그러나 1993년 5월 태평양 돌핀스와의 사직 경기에서 2루에 슬라이딩하는 과정에서 2루수와 충돌하며 발목 부상을 당했다. 그해 31경기 출전에 그쳤다. 1994년에는 아예 1군에서 뛰지 못했다. 1995년 5월 1년 11개월여 만에 복귀전을 치렀다. 그해 50경기에 출장하며 60안타, 2홈런, 타율 0.337을 기록했다.
방위 복무를 끝마친 1996년 4월부터 박정태는 94경기에 출전하며 타율 0.309를 기록했다. 리그 6위의 성적이었다. 특유의 2루타도 25개나 때려냈다. 113안타로 100안타도 재돌파했다. 2루수 부문 골드글러브도 다시 가져왔다.
1997년 타율 0.229로 부진했던 박정태는 이듬해인 1998년에는 0.318로 끌어올리며 리그 3위에 랭크됐다. 129안타, 2루타 24개였다. 골든글러브 역시 그의 몫이었다. 1999년에는 127경기를 뛰며 150안타, 11홈런, 타율 0.329를 기록했다. 리그 7위였다. 5번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00년 0.285, 2001년 0.247, 2002년 0.262, 2003년 0.278, 2004년 0.278로 떨어졌다. 그리고 은퇴했다. 박정태는 14년 동안 롯데에서만 뛰며 1167경기에 출전했다. 1141안타, 85홈런, 타율 0.296을 남겼다. 2루타는 228개였다. 638타점과 531득점을 올렸다.
은퇴 뒤 2005년 3월부터 미국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산하 싱글 A팀인 밴쿠버 캐내디언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 2006년 시즌 종료 후 롯데에 복귀해 2009년까지 롯데 2군 타격코치를 맡았다. 2010년과 2011년에는 2군 감독을 지냈다. 2012년에는 1군 타격코치를 맡았다. 언제나 롯데 감독 후보군에 거론되곤 했지만, 감독을 맡지는 못했다.
그런 사이 좋지 못한 소식이 들려왔다. 만취 상태에서 운전하고, 버스 기사와 시비가 붙으며 운행을 방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고 한다. 롯데 감독직에서 조금 더 멀어진 느낌이 다가오고 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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