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속보도] ‘방송 갑질’에 멍드는 작가들… ‘계약서’가 막아줄까

Է:2018-02-12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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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는 정의로운 척
적폐를 고발하겠다는 PD들
내부 문제엔 조개처럼 입 닫아
출산·육아 이유 휴가는 언감생심”
표준계약서 작성 아직은 권고 수준

최근 온라인에서는 방송작가 A씨의 글이 화제가 됐다. A씨는 지난달 24일 KBS 구성작가협의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자신이 겪은 방송사와 PD들의 갑질 행태를 폭로했다. 예컨대 2016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작가로 일할 땐 밤낮도, 주말도 없이 일했지만 제대로 된 수당을 못 받았다고 적었다. “밥 심부름에 커피 심부름이 주 업무였다”고도 썼다.

가장 눈길을 모은 건 이런 대목이었다. “밖에서는 정의로운 척, 적폐를 고발하겠다는 PD들이 내부의 문제엔 입을 조개처럼 꾹 닫았다. …가끔 나는 생각한다. 전태일 열사처럼 내 몸에 불이라도 지르고 방송국 앞을 뛰어다녀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까.”

이 사이트에는 다른 작가들의 댓글이 잇달아 올라왔다. B씨는 지상파의 한 PD를 거론하면서 “프로그램 진행비로 본인 술 사먹고, 막내 작가 식권도 안 사줘서 서브들이 하루씩 돌아가며 식권 대신 사주고, 진행비를 사비처럼 써대면서 온갖 진상”이라고 적었다.

C씨는 “방송 바닥은 철저히 썩었다”고 썼다. 그는 방송계를 가리키며 “(작가들의) 근로환경은 최악이면서 어떻게든 인건비 줄이려고 발악하는 노동착취 시스템”이라고 평가했다.

방송작가의 처우가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많은 방송작가들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면서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시달리고 있다. 고용불안을 호소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방송사나 제작사는 작가가 ‘프리랜서’라는 신분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들의 처우 개선엔 소극적인 모습만 보이고 있다.

방송작가들의 모임인 ‘방송작가 유니온’이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함께 2016년 내놓은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이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 환경을 실감할 수 있다. 실태조사엔 방송작가 624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 결과가 담겼었는데, 작가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3.8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월 평균 급여는 170만원에 불과했다. 성폭력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41.1%나 됐다. ‘인격 무시’를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82.8%에 달했다. 막내작가들 시급은 당시 최저임금(6030원)에 한참 못 미치는 3880원이었다.

최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2년차 방송작가 D씨는 “막내작가의 한 달 수입은 지금도 15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며 “지방 방송사 작가들의 상황은 더 열악해 10년차 작가가 매달 200만원도 안 되는 돈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20대 미혼 여성인 D씨는 “방송작가 상당수는 여성인데, 결혼을 하게 되면 방송 현장으로 복귀하기가 힘든 게 사실”이라며 “나 역시도 현재로서는 결혼이나 육아를 꿈꿀 수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실제로 방송 현장에서는 작가를 섭외할 때 결혼이나 임신 계획을 물어보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5년차 방송작가인 E씨는 “방송가에선 미혼이거나 자녀가 없는 기혼 여성 작가를 선호하는 게 일반적인 분위기”라며 “출산이나 육아를 이유로 휴가를 얻는 게 다른 직종에서는 일반적이지만 방송작가들에게는 언감생심”이라고 말했다.

열악한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방송작가들은 지난해 11월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다. 전국 단위의 방송작가 노조가 결성된 건 처음이다. 이미지 지부장은 “방송작가를 방송의 ‘소품’처럼 생각하는 분위기를 바꾸려면 노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노조 결성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처럼 비춰질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작가들이 처한 상황에 관심을 가져준다면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가 채용과 해고는 PD가 지닌 ‘연출권’의 하나일 뿐이라는 분위기부터 바꿔놓고 싶다”면서 “의미 있는 성과를 하나씩 만들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다행인 건 최근 들어 정부도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12월 ‘방송작가 집필 표준계약서’를 마련해 시행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방송 현장에서는 작가 채용이 계약서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져왔던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많은 작가들은 부당하게 해고되거나 급여를 받지 못하더라도 법적으로 구제받을 방법이 막연했다. 문체부가 마련한 계약서엔 방송 원고 집필 및 사용과 관련, 방송사와 작가, 제작사와 작가 간의 권리 관계를 명확하게 규정하도록 명시돼 있다.

이 지부장은 표준계약서 제도 시행에 대해 “이제야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된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계약서를 쓰도록 한 것이 아직은 권고 수준이어서 방송가에 ‘계약서 문화’가 안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작가들의 처우가 개선돼야 국내 방송의 퀄리티도 올라간다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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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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