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의구] 대북정책 밑그림 다시 그리자
지난 6월 21일 이명박 대통령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간부들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다. 한밤중에 그렇게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마태복음 요한계시록 등 성경 여러 곳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언제 메시아가 재림할지 모르니 항상 깨어 있는 마음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통일이 지금은 요원해 보이지만 갑자기 여건이 조성될 수 있으므로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발언이 보도된 뒤 북한의 대남 공식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이를 북의 급변사태로 해석해 “체제와 존엄에 대한 정면도전”이라고 비난했다. 노동신문에서도 ‘체제통일 흉심을 드러낸 망언’이라는 논평을 실었다.
도둑처럼 찾아온 북한 사태
그런데 통일은 아니지만 통일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이 정말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일부에서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를 두고 5년 혹은 3∼4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관측을 내놓긴 했지만 이미 뇌졸중으로 한번 쓰러진 북한 최고지도자의 건강관리가 허술할 리 없다고 막연히 생각하다 사태를 맞았다. 얼마나 급작스러웠는지 국가정보원이나 군 정보 당국도 까맣게 몰랐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에게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치는 식으로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진보 진영에서는 도둑처럼 찾아오는 통일은 우리 지향점이 아니며 남북 양 체제가 합의를 통해 기틀을 마련한 뒤 평화롭고 점진적으로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역시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정석대로 현실이 돌아갈지 아니면 비상한 방식으로 들이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형편이 이런데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을 소홀히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평화통일 여건의 성숙이든 급변사태든 모두 남쪽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따라서 미리 준비하는 건 우리의 의무이자 권리다. 북한 눈치를 볼 사안이 아니다.
북한은 민족통일을 지상과제로 내세우면서도 우리가 추진하는 통일정책에는 번번이 각을 세워왔다.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이 통일 재원을 마련키 위해 통일세를 준비하자고 제안하자 조평통은 “급변사태를 염두에 둔 극히 불순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지난 8월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 때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탐지·제거 훈련을 실시한 데 대해서도 “전쟁을 일으키려는 범죄적 흉계의 발로”라며 보복을 다짐하기도 했다.
비상계획 재점검 서둘러야
그러나 북한의 비난은 비난이고, 우리는 우리대로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굳이 티를 낼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대북정책의 큰 밑그림부터 다시 손봐야 한다. 첫 번째는 북 유사시 적용할 비상계획을 충실하게 다듬는 일이다. 김정은 체제가 갑자기 등장함으로써 북한의 유동성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다. 북한 권력구도가 어떤 식으로 자리잡아 가는지 예의주시하면 상황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시나리오들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만약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핵, 미사일이 오용되거나 다른 곳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차단해야 한다. 대규모 난민이 휴전선이나 북·중 국경으로 밀려들 가능성도 처리하기 쉽지 않는 사안이다.
북한이 자행할지 모를 국지도발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되 도발 시 강력한 응징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장기적인 대북정책 목표는 북한 체제가 핵 무장 고집을 꺾고 지구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돼 통일을 향한 대로로 나올 수 있도록 연착륙을 돕는 데 둬야 한다. 갑자기 찾아온 북한의 세 번째 지도체제는 우리의 대처에 따라 한반도의 위기가 될 수도 있고, 평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IJ о
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