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박희선] 겨울 옷장을 정리하며

Է:2011-12-2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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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박희선] 겨울 옷장을 정리하며

얼핏, 겨울은 빈집 같다. 길가를 뒹굴던 빛바랜 낙엽마저 다 쓸려가고 나면 도시는 빠르게 무채색이 되어 버린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가로수들엔 간간이 새들이 떠난 빈집이 눈에 띈다. ‘어머, 이렇게 가까운 곳에 새집이 있었네?’ 새들이 일가를 이뤘다가 떠나고, 위장막처럼 이들을 지켜주었던 나뭇잎들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그곳에 새집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쓸쓸함. 겨울은 그 색깔만큼이나 처연한 기분에 젖게 만든다.

나무도, 하늘도, 원래 회색이던 건물들까지 다함께 우중충하게 가라앉은 이 계절엔 사람들도 약속이나 한 듯 어두운 옷들을 꺼내 입는다. 손도 얼굴도 가능하면 꽁꽁 감춰서 어떨 땐 시커먼 짐 보따리들이 발을 달고 걸어다니는 것 같다. 이런 계절이 아니라면 크리스마스 빨간 장식이 그렇게 눈에 띄었을까? 하늘 가득히 내리는 하얀 눈이 그렇게나 반가웠을까? 지구 남반구에서 맞이할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아무래도 감동이 덜할 것 같다.

스산한 겨울 풍경에 대한 반감인지, 따뜻한 것에 대한 그리움인지, 나는 이 무렵에 충동적으로 옷을 잘 사는 편이다. 손에 대기만 해도 포근한 스웨터라든가 머플러, 혹은 부피도 큰 코트나 점퍼를 덥석 사들고 마는데, 어느 계절보다도 과감한 색상 선택을 한다는 것이 또한 다르다. 실제로 나의 겨울 외투 중엔 블랙이나 브라운 계열이 거의 없다. 그런 색깔은 이너나 팬츠로 받쳐 입고, 외투는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무지개 색깔이 거의 다 있다. 빨강, 주황, 핑크, 노랑, 카키, 보라, 코발트블루…. 나도 모르던 겨울옷 취향을 가끔 가까운 사람들이 지적해 줘서 깨닫곤 하는데, 그럴 때면 생각한다. 아, 나는 시꺼멓게 비 오는 날 노란 우산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나 보다, 하고.

재밌게도 이런 옷 취향이 일할 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철새 탐사나 야생동물 흔적 찾기 같은 생태여행을 떠날 때 무신경하게 이런 옷들을 입고 갔다간 동료들에게 혼쭐이 나기 십상이다. 원색 옷은 동물들 눈에도 잘 띄기 때문에 겨울철 자연 관찰에 방해가 된다. 반면에 컬러풀한 겨울옷들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책이나 잡지에 실을 여행지 촬영을 할 때 나의 ‘색감 있는’ 뒷모습 하나로 사진에 생기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옷이 두꺼워지는 겨울엔 옷장 다이어트가 또 하나의 숙제다. 겨울옷들로 미어터지는 옷장을 주체 못 하다가 언젠가부터 ‘옷이 하나 늘면 하나를 버린다’는 규칙을 갖고 살았다. 그러면 충동적인 씀씀이도 줄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는데, 효과를 제법 보고 있다. 어제 새로 산 패딩 반코트를 옷장에 넣으며 지난겨울 마르고 닳도록 입다가 진짜 닳아서 오리털이 다 빠져 버린 갈색 패딩 점퍼를 꺼내놓았다. 10년도 넘게 산과 들을 함께 걸은 녀석이라 버리기가 영 아쉽다. 새로 산 옷이 갈색도 회색도 아니라는 점도 왠지 양심에 찔리는 것 같다.

박희선(생태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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