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잃고 버려지는 것, 그 쓸쓸함을 마주하다
수원 신동 재개발지구, 떠난 사람과 남겨진 개 이야기
버려진 흰 개가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개를 쫓아갔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오래도록 사람이 살지 않은 빈집엔 온기가 없다. 페인트가 칠해져 있지 않은 회색 슬레이트집 유리창은 깨져버렸다. 거미줄 너머로 구겨진 운동화, 찌그러진 페트병, 옷가지가 보인다. 미처 짐을 챙기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버리고 간 것인지 세간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다.
이 집 옆에는 또 다른 집이 있다. ‘투쟁’이란 붉은 글자가 분노에 찬 듯 집 벽면에 휘갈겨졌지만 분노는 시간 속에서 멈추었다. 사람은 떠나 버렸고, 집 앞에는 강아지풀이 무성하다. 집 앞에는 빨간 개밥그릇과 소뼈 두 조각, 빈 참치캔이 있다. 이 집 개의 마지막 밥이었던 것 같다. 개가 주인과 함께 떠난 건지, 아니면 빈집에 남아 주인이 남긴 마지막 밥을 홀로 먹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음 집은 보이지 않는다. 다 부서진 집들의 잔해만 쌓여 있다. 잔해조차 치워진 공사터엔 사막처럼 황량한 모래들이 펼쳐졌다. 이 사막 같은 공사터에서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모래밭을 헤매다 유리창이 안 깨진 집을 발견했다. 누구 있어요, 불렀지만 인기척이 없다.
한참 있다 한 남자가 어둠 속에서 대답했다. 불 꺼진 집에서 남자는 허리를 구부린 채 문을 열고 나왔다. 소인국(小人國)에나 있을 법한 이 작은 문에서 나온 남자는 용역 직원이 집을 부술까봐 외출을 하지 않는다. 세입자인 남자는 1000만원이 안 되는 보상비로는 갈 곳이 마땅치 않다 했다. 남자는 용산 사태와 철거민 얘기를 늘어놓다 다시 이 작은 집을 지키려 쑥 들어가 버렸다. 이곳은 경기도 수원시 신동 재개발 지구다.
버려진 개
한 뼘 땅을 갖기 위한 전쟁은 오늘도 계속된다. 쇠락한 판자촌을 개발해 명품 주거공간을 만들겠다고 약속하는 자, 아파트 건축으로 이익을 올리는 자, 소유한 싸구려 땅이 개발돼 돈을 버는 자, 싸구려 땅에 얹혀살다 쫓겨나 악만 남은 자, 쫓겨나는 자의 집을 부수며 먹고사는 또 다른 가난한 자. 지구에는 땅따먹기 싸움이 매일 벌어진다. 바로 이곳에서도.
집을 지키기 위해 외출을 하지 않는 남자와 헤어져 걷다 왈왈, 개소리가 요란한 집에 도착했다. 탁씨 성을 가진 아저씨는 여기 넓은 공사터 끝자락에 산다. 이미 개발된 신축 아파트와 아저씨의 집 사이에는 개천이 흐른다. 사실 말이 집이지,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가건물이다. 아저씨는 예순 살이다.
탁씨 아저씨도 딱히 갈 곳이 없고, 사람들이 떠나며 버린 개들도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아저씨가 하는 일은 버려진 개 60여 마리를 키우는 거다. 예삐, 몽이, 왕눈이, 복실이, 짱가, 꼬맹이, 또순이, 까미, 순둥이…. 하도 개들이 많아 같은 이름을 가진 개들도 여럿 된다. 그래도 아저씨는 이름을 다 외운다.
아저씨는 10년 전 개 한 마리를 키웠다. 화물 기사인 아저씨는 실수로 인근 교회 개를 치었고 미안한 마음에 개 두 마리를 사서 한 마리를 목사에게 주었다. 그리고 한 마리는 자신이 키웠다. 그러다 몇 년 전 동네 카센터 주인이 곰팡이 핀 음식을 개에게 먹이는 걸 보곤 그 개를 데려왔다. 재개발로 2년 전부터 사람들은 떠났고, 개들은 버려졌다.
어떤 개는 ‘죄송하지만 잘 키워 달라’는 주인의 쪽지와 함께 버려졌다. 어떤 개는 이빨이 다 빠진 채 버려졌다. 어떤 개는 무언가에 눈이 찔려 앞이 보이지 않은 채 버려졌다. 어떤 개는 전봇대에 묶여 굶주린 채 버려졌다. 어떤 개는 주인이 아기를 임신하면서 버려졌다. 그렇게 버려진 개들이 짝을 지어 개를 낳고, 그 개가 또 개를 낳아 60여 마리가 됐다. 아저씨는 10만원이 넘는 개 중성화 수술비가 없었다.
버려진 개는 아저씨 집에 와서 처음엔 눈치만 보며 침묵을 지켰다. 불러도 오지 않고, 커다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밥을 줘도 먹지 않았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면 개들끼리 친해져 떼로 몰려다니며 아저씨 집 앞 개천에서 놀았다.
아저씨는 가난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저씨는 공장, 공사장에서 노동을 하다 화물 기사가 됐다. 십수년 전 일하다 다친 허리는 교통사고로 반복해서 다쳤다. 지금 하는 일도 매일 주어지는 건 아니다. 한때는 일이 계속 들어오지 않아 개들과 함께 먹을 것이 없어 한참 울었다. 울음을 그친 아저씨는 갈비집에서 남은 뼈를 얻어다 먹였다. 아저씨는 뼈다귀도 개들에게 그냥 먹이지 않는다. 다시 한 번 삶아서 준다.
요즘도 아저씨는 돈 없으면 라면 한 개 끓여 먹는다. 그래도 동네 편의점에서 얻어온 유통기한이 갓 지난 우유, 김밥, 샌드위치와 갈비집의 뼈다귀를 개들에게 정성스레 먹인다. 아저씨가 편의점에 갔다 돌아오면 개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수십 마리 개들이 새끼 제비처럼 입을 벌린다. 아저씨는 연약한 개, 새끼를 밴 개, 막 출산한 어미개 입에 먼저 빵 조각을 넣는다.
이빨이 없는 개는 아저씨가 빵이나 치즈를 오물오물 씹은 뒤에 준다. 한번은 이빨 없는 개가 빵을 덥석 물어 삼켰는데 목이 막혀 뒹구는 걸 보고선 이런 방법으로 먹이고 있다. 이 개는 아저씨 없인 하루도 살 수 없다. 사실 아저씨도 앞니 몇 개가 빠졌다. 나도 이빨이 빠져 가는데 앞으로 어쩌지, 아저씨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개들은 흙바닥에 마구 뒹굴어 털들도 엉켜 있고 꾀죄죄하다. 그래도 온순하고 토실토실하다. 아저씨는 여름철엔 개집 앞에 선풍기를, 겨울철엔 온풍기를 틀어준다. 개들은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도 꼬리를 흔든다. 어떤 개는 두 발을 사람 다리 위에 올려놓으며 머리를 들이댄다. 머리를 쓰다듬거나 안아달라는 거다. 아저씨는 혼자 산다. 어쩌다 혼자 살게 됐는지는 묻지 못했다. 아마 사정이 있을 것이다.
남겨진 사람
아저씨는 외롭지 않다. 일 하러 나갈 때면 수십 마리 개들이 가지 말라며 한참을 쫓아 달린다. 아저씨가 밤늦게 오지 않을 땐 집 앞 가로등에 나와 기다린다. 아저씨를 쫓아 큰길까지 따라오다 차에 치여 죽은 개도 있다. 그래서 아저씨는 업무가 아닌 다른 일로 외출할 땐 봉고차에 개들을 싣고 나간다. 한때 우리를 만들어 개들을 가둔 적도 있지만 녀석들이 뛰쳐나가거나, 울어대는 바람에 불쌍해서 우리를 없앴다.
버려졌다 이 집에 온 개들은 정에 굶주려선지 지나가는 사람을 잘도 따른다. 인근 아파트에 사는 주부 이씨(47) 아줌마는 우연히 이 집을 몇 차례 지나가다 개 ‘꼬미’와 친해졌다. 지난 여름 꼬미가 아줌마를 보고선 개천에 뛰어들었다. 개천 맞은편에서 걸어가는 아줌마에게 달려가려고 뛰어든 것이다. 마침 장마철이라 물이 가득 찼을 때였다. 개는 물에서 허우적거리다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아줌마는 살려달라고 소리치다 급한 마음에 뛰어들어 ‘꼬미’를 건져냈다. 아줌마는 이후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에 아저씨의 사연을 올렸고 지난 16일에는 카라 소속 수의사들이 중성화 수술을 했다.
하지만 어떤 주민들은 개들을 싫어했다. 개가 짖는다고 신고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날은 열 몇 마리 개들이 급사했다. 집 인근에 버려진 음식을 먹곤 한꺼번에 소리 지르며 죽은 것이다. 독이 든 음식이었는지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아저씨가 일을 나갔다 돌아오면 큰 개들은 한두 마리씩 사라지기도 했다. 하루는 잃어버린 개를 찾으러 공사장을 헤맸는데 한 청소부가 아저씨의 개를 토막 내 구우려던 참이었다.
‘개 같은 새끼야!’ 아저씨는 욕을 하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왜 남의 개를 훔쳐 갔느냐, 그렇게 따지곤 돌아섰다. 아저씨는 남에게 화를 잘 내지 못한다. 지나가다 개들을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도 많았다. 개들은 요즘 집 밖으로 멀리 놀러 나가지 않는다. 멀리 나가면 위험하단 걸 본능적으로 안다.
아저씨는 갈 곳이 없다. 보상금 840만원을 받았지만 그조차 생활비로 조금씩 썼고 많은 개들을 데리고 갈 곳이 없다. 개들은 대부분 잡종이라 입양할 곳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입양이 성사된 적도 있었지만 오전에 데려갔다 그날 오후에 돌려보낸 경우도 있었다. 동물보호법상 유기동물보호소에 들어간 동물은 10일 이내 입양되지 않으면 안락사 대상이 된다. 아저씨는 개들을 죽이기 싫었다.
간혹 개들을 돌보러 오는 이씨 아줌마는 보다 못해 조심스레 말했다. “애들 편하게 안락사라도 시켜줍시다.”
아저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먹으면 같이 먹고, 굶으면 같이 굶을 겁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거예요. 폐지를 주워 먹고 살아도 되고 고물을 주워 먹고 살아도 돼요. 산이든 섬이든 개들이랑 같이 살면 상관없어요. 내가 데리고 사니까 끝까지 책임지려고요.”
이씨 아줌마는 더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저씨는 개들과 함께 살아갈 곳을 오늘도 찾고 있다.
아저씨를 찾아간 지난 18일, 개들은 활기차게 짖었다. 아저씨 옆에 붙어 앉아 빵 조각을 받아먹다 심심하면 떼로 달리기를 하고, 지치면 아무 데나 뒹굴어 잠을 잤다. 개들은 재개발이 뭔지, 땅이 뭔지, 돈이 뭔지 모른다. 개들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사랑받는 게 뭔지, 버려지는 게 뭔지 안다.
쓸모를 잃고 버려지는 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일이다. 아저씨는 그걸 안다.
수원=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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